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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인천시가 도심 곳곳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에 대한 강제 철거에 나섰다. 도시경관개선과 시민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반면 정당의 정치적 의견 표현을 제한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9개 군구 320여개 일제 정비… 전국서 인천 최초
킥보드 타던 대학생의 목에 걸리는 등 사고 발생

여야 정치권 "문제는 인식… 상호 조율과정 우선"
혐오·비방문구 제한 조건, 판단 기준 모호 '혼란'

무소속 정치인 게시 불가 형평성 논란도 재점화
전문가 "전광판·온라인 대체해 환경오염 최소화"


■ 정당 현수막 철거 나선 인천시


20일 인천시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기준 인천 강화군을 제외한 9개 군·구에서 철거한 정당 현수막은 320여개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연수구가 100개로 가장 많았고 부평구 81개, 동구 39개, 남동구 28개, 서구 18개 등 순이다. 강화군은 정당 현수막 난립 지역을 파악해 조만간 철거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정당 현수막 철거에 나선 건 전국에서 인천시가 처음이다. 지난달 개정·시행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에 근거한 조치다.

개정 조례는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로 걸도록 규정했다. 또 혐오나 비방 표현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거리 미관 개선과 시민 보행 안전 확보 등이 주된 개정 이유다. 지역 기초단체도 개정 조례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기로 하면서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가 이뤄지게 됐다.

정당 현수막은 지난해 옥외광고물법이 개정·시행된 이후 무분별하게 설치되면서 시민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천에서는 지난 3월 연수구 한 사거리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20대 대학생이 정당 현수막에 목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당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보장하겠다며 정당 현수막의 설치 수량과 규격, 장소를 제한받지 않도록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한 게 또다른 역효과를 내는 실정이다. 이는 인천시가 정당 현수막 철거에 적극 나서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슈앤스토리 정당현수막 DB
지난 12일 인천 연수구 소금밭사거리에 걸린 정당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인천시와 인천 기초단체들은 이날 이후 지난 19일까지 320여 개의 정당 현수막을 철거했다. /경인일보DB

■ '표현의 자유 제한' vs '시민 불편 해소'


인천시가 정당 현수막에 대한 철거 조치를 시행하면서, 정당에선 표현의 자유를 인천시가 제한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인천시 개정·시행 조례가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여야 정치권에서는 정당 현수막 강제 철거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는 점에서 법령으로 게시 방법을 규정하거나 철거 조처를 강행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정당 현수막 난립을 둘러싼 문제점은 충분히 인식한다는 점에서 상호 조율하는 과정이 우선으로 이뤄졌어야 한다는 게 정당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지역 정치인은 "정당 현수막에는 각종 현안과 관련한 정당 의견을 담고 있는데 인천시 조례에 따라 지정 게시대에 걸려면 한 달가량 기다려야 한다"며 "총선을 200여 일 앞둔 상황에서 정당과 정치인이 시급하게 목소리를 낼 기회 자체가 많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했다.

인천시가 정당 현수막 내 혐오, 비방 문구를 제한했는데 이를 판단할 기준이 모호해 혼란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관계자는 "혐오, 비방 문구라는 것을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며 "정당 현수막 문구와 지역구 당 설치 개수 등을 내부적으로 자정 방안을 논의하던 단계에서 인천시가 정당과 충분한 협의 없이 철거에 나서서 당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인천시가 시행하는 정당 현수막 철거와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에 배치된다는 점도 법률적으로 다퉈봐야 할 여지가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인천시 조례가 상위법에 근거하지 않아 위법하다고 판단, 대법원에 조례를 개정한 인천시의회를 상대로 '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고 조례 집행 정지를 신청했다. 인천시는 대법원의 판결 전까지는 조례가 유효하다고 보고, 조례 효력이 정지되기 전까지 정당 현수막 철거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인천시는 무분별한 정당 현수막 게시는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부합하지 않고 시민의 안전한 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당 현수막을 지속해서 철거하겠다는 것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정당 현수막 철거는 시민이 쾌적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에서 시행해야 할 사항"이라며 "앞으로도 규정을 지키지 않고 내건 정당 현수막은 조례에 따라 적극적으로 조치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당 현수막 철거를 계기로 기존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만 내걸 수 있는 정당 현수막 규정에 대해서도 형평성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현행법상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은 자유롭게 정당 현수막을 게시할 수 있지만, 무소속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 무소속 정치인의 현수막은 정당 현수막으로 규정하지 않아서다.

이슈앤스토리 정당현수막 DB
지난 12일 인천 연수구 소금밭사거리에 걸린 정당 현수막이 철거되고 있다. 지난 12일 연수구 소금밭사거리 도보 위에 철거된 정당 현수막이 놓여 있다. /경인일보DB

■ 정당 전광판 등 대안 필요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정당 현수막을 둘러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당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시민 불편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정당 현수막에 대한 명확한 규정 정립이 시급하다고 봤다. 일례로 유럽 정당들은 현수막 대신 통행량이 많은 교차로나 거리에 다른 정당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전광판을 설치해서 정당의 주장이나 활동을 알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

정영태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집회나 시위가 공공질서를 침해하거나 시민에게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면 일정 수준의 제약을 받는 것처럼 정당 현수막 게시 활동도 공익과 정당 활동의 자유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선거방송을 할 때 토론회 순서나 시간 등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듯 정당 현수막과 관련해서도 선거관리위원회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이 규정을 확립해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정당 현수막 대신 전광판이나 온라인 등 다른 수단을 활용해 정당 활동을 하면서 안전사고를 줄이고 환경오염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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