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선희 작가의 신작 '이름보다 오래된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서 기록한 고라니의 초상'은 어느 날 이른 아침, 들개에게 쫓기던 고라니 한 마리의 간절한 눈빛을 봤던 때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고라니는 빈번하게 로드킬을 당하며 농촌에 해를 끼치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서식지가 개발로 침범당한 이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기란 작가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 고라니가 전 세계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간과하는 사이 한반도에서 이들이 사라진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책에는 작가가 10년간 만난 고라니 200여 마리 가운데 50여 마리의 얼굴이 실려있다.
작가는 인간이 폭력을 가하지 않는 야생동물구조센터와 국립생태원 등에서 비로소 고라니를 만났다. 고라니 스스로 작가의 눈을 들여다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 찍은 이 얼굴에는 각기 다른 생김새로 자신들의 고유성과 다양성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레비나스가 말한 윤리적 책임을 요청하는 '타자의 얼굴'로 다가온다. 지극히 인간적인 이해와 방식으로 생태 문제를 해결하려는 딜레마가 고라니를 둘러싸고 있다. 흔하고 하찮은 존재로 이들을 대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책은 한 번도 사회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고라니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면서 생태계에서의 인간의 역할을 다시금 묻는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