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어요."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대원 400여 명이 8일 오전 파주 설마리 영국군 추모공원을 찾아 72년 전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설마리 임진강 전투에서 피를 흘렸던 참전용사들을 추모했다.
임진강 전투는 1951년 4월22~25일 현재 파주시 적성면에 위치한 설마리 235고지와 임진강 일원에서 영국 글로스터 대대가 10배가 넘는 병력의 중공군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625명 대대원 중 59명이 전사하고 526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6·25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돼 있다.
당시 글로스터셔 대대가 사흘 동안 버티며 중공군의 진격을 지연시킨 덕에 유엔군은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해 중공군의 서울 진격을 막을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희생당한 영국군 장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1957년 참전기념비가 건립됐고 1976년부터 매년 영연방 참전용사를 초청한 추모행사가 진행됐으며, 2014년에는 전투비 인근에 추모공원이 조성됐다.
사흘 전 전북 새만금의 잼버리 영지를 떠난 영국 잼버리 대원들은 이후 서울드래곤시티호텔 등에서 지내다가 이날 설마리 추모공원을 찾았다.
이들은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와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아랑곳없이 양산을 접고 모자를 벗은 채 엄숙한 추모행사를 진행했다.
학생 대표 2명이 국가보훈부와 국방부 의장대의 진행에 맞춰 헌화했고, 이어 주한영국대사관 주무관인 마틴 영 소령으로부터 설마리 전투에 대해 들었다.
추모 공간이 협소해 400여 명을 한꺼번에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헌화와 설명이 한 번 더 진행됐다. 이어 대원들은 추모 공원 곳곳을 돌아보며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은 용사들을 기억하고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날 학생 대표로 헌화한 폴 잭슨군은 "할아버지가 한국 전쟁이 끝날 무렵 전투에 참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영국 스카우트 1기이기도 하다. 잼버리에 참여할 때 할아버지의 배지를 착용했다. 한국에 온 것이 나에게는 더 뜻깊다"면서 "할아버지께서 현재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날 영국 대표단의 설마리 영국군 추모공원 방문은 우리나라 국가보훈부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새만금에서 철수한 영국 대표단이 마땅한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하자 국가보훈부가 영국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는 일정을 제안했고 영국 대표단이 수용했다.
국가보훈부는 10일까지 영국 대표단에 설마리 추모공원 및 서울 전쟁기념관 방문,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등 보훈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파주/이종태기자 dolsae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