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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호석 전 금호타이어 독일법인장.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해외 시장은 알고 나가면 전혀 두려울 것이 없는 새로운 개척지입니다."

'글로벌 러시' 저자 염호석은 금호타이어에서 20여 년 동안 해외 영업을 전담한 샐러리맨이었다. 1996년 입사해 2018년 독일법인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 아프리카, 대양주, 북·중미, 유럽에 타이어를 팔았다.

그가 해외 주재원으로 겪은 시행착오와 축적된 노하우를 묶어 지난 7월 책으로 펴냈다.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중소기업, 해외 주재원을 꿈꾸는 직장인과 청년이 실무 지침서로 삼기에 충분한 기록이다.

거창 출생, 세살 무렵 도화동 단칸 셋방살이로 인천 정착
공무원 출신 아버지, 운송업 도전 성공… 가세 펴기 시작
부촌 '동일주택단지' 살아… '김찬삼 전집' 읽고 외교관 꿈

1996년 금호그룹 입사, 처음부터 해외 주재원 파견 목표
국내 최초 전투기 타이어 수출… 北과 물물거래 '빈손'도
멕시코 매출 1억불 '총리 표창'… "중기 해외진출 돕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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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공원.

염호석 전 금호타이어 독일법인장은 부친(염태수)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3남매의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그만두고 민간기업 '경인에너지'(현 SK인천석유화학)에 입사했다. 염 전 법인장이 세 살 무렵 다섯 식구가 도화동 단칸방 셋방살이로 인천에 정착했다.

염 전 법인장 부친은 경인에너지에서 삼양운수로 자리를 옮겼다가 정우유조를 세워 운송사업에 도전했다. 탱크로리 여러 대를 보유하고 동양화학, 한불화학에 납품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인천 미추홀구 학익동에서 동양화학(현 OCI)은 1968년부터 소다회 공장을 가동했고, 1976년에는 프랑스 론풀랑과 합작 투자로 백(白)카본 공장을 설립했다. 동양화학의 소다회를 주원료로 하는 백카본은 제지, 페인트 등을 생산하는 기초화공약품이다. 1960~70년대는 화학산업의 부흥기였다. 학익동은 화학산업 생산기지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부친의 사업 성공으로 가세가 폈다. 염 전 법인장이 숭의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가족은 도화동 단칸방에서 숭의4동 저택으로 이사했다.

제물포시장에서 제물포성당으로 오르는 언덕 주택가는 동일주택단지로 불렸는데 자유공원 기슭과 함께 인천의 양대 부촌(富村)이었다. 다섯 식구가 방 4개, 화장실 2개가 있는 단층집을 썼다.

염호석 가족사진
염호석(맨 오른쪽) 전 금호타이어 독일법인장 가족은 부친을 따라 경남 거창, 서울을 거쳐 인천에 정착했다. /염호석 제공

지난 9일 제물포성당 입구 쪽 단독주택(수봉로33번길 79)의 문을 두드려 주민(77)을 만나 동일주택단지에 대해 물었다.

숭의동에서만 40년 이상 거주했다는 그는 "아래 (제물포)시장집에 살다가 20년 전 여기로 이사했다"면서 "동일주택 대지가 보통 100평에서 150평까지 넓었는데 예전에 와서 보면 참 눈부신 마을이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이 부의 상징이었다.

인천의 중심 주거지였던 중구 내동은 좁은 필지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주택의 신·증축이 불가능했다. 인천 중구에서 그리고 서울 외지인들이 배밭, 사과밭이던 숭의4동의 땅을 사 저택을 짓기 시작했다.

1980~90년대 아파트 건설·분양 붐이 일고, 인천 도심이 확장하면서 동일주택단지는 빌라촌으로 변했다. 염 전 법인장 가족도 숭의4동 집을 팔고 1990년대 관교동 동아아파트로 이사했다. LPGA 프로골퍼 김미현, 개그맨 이혁재 등 유명인이 이 아파트에 이웃으로 살았을 정도로 고가 아파트였다.

'소년 염호석'의 기억은 숭의초등학교, 수봉공원으로 점철된다. 숭의동은 수인선 철도와 경인전철 역사가 인접해 있고 사방으로 뚫린 도로가 인구를 끌어모았다. 가계 소득이 낮은 이른바 '시장집'에서부터 동일주택단지에 사는 부유층 아이들이 한데 모여 숭의초에서 공부했다. 요즘 말로 '소셜 믹스'가 구현된 공간이었다.

숭의초 교가는 "수봉산 기슭에 우뚝이 솟아/긴 역사 자랑하는 새싹의 학원"으로 시작했고, 염 전 법인장은 아직도 그 노래를 잊지 않고 다 부른다. 수봉공원은 1970년대 중반 시민공원(어린이공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1979년에는 자유공원에 있던 놀이기구가 수봉공원으로 이전하면서 인천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아무것도 없는 야산에 놀이공원이 생기면서 친구들하고 자주 놀러 갔어요. 잠자리와 메뚜기도 잡았고. 어린 나이라고 해도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그러면 혼자서 공원에 올라가고 주변 길을 걷고 달리면서 풀었어요. 제게는 굉장히 많은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입니다."

염호석-호주
염호석 전 법인장은 해외 주재원의 성공 조건 중 하나로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꼽는다. 호주 주재원 시절 시드니 서큘라 키 페리 선착장 앞에서 큰딸과 찍은 사진. /염호석 제공

염호석 전 법인장이 막연하게나마 해외 생활의 꿈을 마음에 담기 시작한 건 송도중 1학년 때 집 서가에 꽂힌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을 읽으면서부터다.

세계여행가 김찬삼(1926~2003년)은 인천 출신으로 30여 년간 세계 1천여 도시를 여행한 모험가이면서 학자다. '세계의 나그네'로 불린 김찬삼이 삼중당에서 낸 컬러판 전집은 1970~80년대 베스트셀러 목록에 늘 올랐다.

염 전 법인장은 외교관이 되기로 마음먹고 대학에 들어갔다. 군 제대 후 외무고시에 매진했지만 1차에서만 두 차례 낙방했다.

"계속 이렇게 고시에 매몰된 삶을 살기보다 상사에 들어가 내 꿈을 키워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한국 제품을 세계 각 나라에 팔아 돈을 벌어오는 일, 참 멋있지 않나요?" 그는 1996년 금호그룹에 공채로 입사했다. 처음부터 해외 주재원 파견 근무를 목표로 삼았다.

염 전 법인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투기 타이어를 수출한 장본인이다. 1999년 필리핀 공군에 F-5 전투기용 타이어 80개(2만 달러 상당)를 납품했는데, 주한 사절단 모임에서 알게 된 필리핀 무관을 통해 성사시킨 일이었다. 전투기 타이어 수출 외에 그가 '최초' 타이틀로 내세울 만한 거래 시도가 또 있다. 북한에 승용 타이어를 보낸 실무 역할을 담당했는데, 지금까지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들려줬다.

"아마 1999년이었을 겁니다. 그룹 베이징 지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타이어를 북한에 보내는 대신 각강(자른 면이 정방형으로 각이 진 압연 강철)을 받는 물물교환 거래였어요. 컨테이너 20개(TEU)에 타이어 약 1천500개를 실어 인천항을 통해 보냈는데, 각강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임프롬인천 염호석 인터뷰

염 전 법인장은 2000년 금호타이어 호주법인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호주에서 모든 비즈니스를 배웠다"고 말했다. 핵심은 거래 상대방의 관점에 서는 것이다.

"선진국 거래처와의 협상은 논리 싸움입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카운터 파트너인 구매 담당 이사가 무지막지하게 깐깐했습니다. 우리 제품 가격을 깎아야 한다는 논리에 초기엔 제가 번번이 당했습니다. 미팅 후 복기하면서 제 나름의 논리를 만드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걸 제시하면서도 제 방향을 고수하는 논리를 폈습니다."

염 전 법인장은 2008년 뉴욕사무소장 시절 "영업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딜"을 성사시켰다.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영업이 막막하던 시절 옐로 캡(택시)에 일본산 요코하마 타이어가 부착된 것을 발견했다. 즉시 타이어 대리점을 찾아가 가격, 광고비 지원 조건 등을 협상해 성공시켰다.

'뉴욕의 명물' 옐로 캡에 금호타이어를 독점 납품했다. "맨해튼에 갈 때마다 '내가 판매하는 제품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넘쳐났었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뉴욕사무소가 폐쇄되고 그는 2010년 멕시코지사로 부임했다. 멕시코 전역에 수십 개의 소매점을 두고 젊은 층을 대상으로 고인치 타이어를 판매하는 거래선(UHP)을 집중 공략했다. 줄담배를 즐기는 거래선에게 '동질감'을 주기 위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렇게 해서 주문의 90% 이상이 고부가가치 제품인 거래선을 뚫었다. 그는 멕시코지사장 부임 1년 만에 매출을 60% 이상 늘리고, 2011년 매출 1억 달러를 넘겨 멕시코 시장 수입 타이어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제48회 무역의 날 행사'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염호석-국무총리 표창
염호석 전 법인장은 멕시코지사장 시절 매출 신장을 기록해 그 공로로 2011년 무역의날 기념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염호석 제공

염 전 법인장은 금호타이어를 떠난 이후 네덜란드 자동차부품 무역회사 EQC의 독일 대표를 거쳐 지난 6월부터 경기도 안산에 있는 일정실업에서 전무로 재직 중이다. 방송통신대 경영대학원 MBA 과정을 밟고 있다.

고향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중소기업을 돕는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염 전 법인장은 자신을 '찐 인천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인천에서의 경험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분명히 말했다.

염호석 큐알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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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첫 기억은 세 살 무렵 도화동에서 시작합니다. 인천 숭의초, 송도중, 제물포고 경험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제 삶의 일부입니다. 월미도에서 바다를 보며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꿈을 꿨습니다. 인천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해주었습니다."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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