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런 얘긴 안 하려 그랬는데."
현관 바닥에 앉아 신발 끈을 묶던 아주머니가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점심시간 끼어 있으면 대충이라도 먹을 거는 주고 그래야 아줌마들이 좋아해. 새댁이 잘 몰라서 그러나본데."(일의 기쁨과 슬픔·2019·장류진)
정부, 노동시장 축소·비용 인상 부담에 정책 도입
경제적 양육 부담 줄여 저출산 극복 '큰그림' 효과
동남아 노동자 한정에… 중국인 반발 가능성 높고
"내국인 일자리가 먼저" 한국 노동계 반응도 싸늘
서민 감당하기엔 만만치 않은 비용… 실효성 의문
단축근무 등 양육시간 보장은 않고 탁상행정 비판
실수요자들 "신원보증 확실해야 안심하고 맡길 듯"
■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근로자 한국 상륙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한국에 온다. 기간은 6개월, 장소는 서울이다. 필리핀 등에서 100명이 오는데 이들은 가정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맡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사 및 육아도우미는 12만1천명 수준. 지난 2013년 25만1천명에서 불과 10년 이내에 절반이 줄었다. '파출부'라 불리던 가사근로자가 사라진 자리를 '이모님'이 메우기 시작했다. 가사와 육아에서 가사 노동을 최소화하고 육아만을 담당하며 보육과 등·하원을 책임지는 구조로 노동시장이 변화했다.
종일 근로·신도시 기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중국 국적자 50대는 270만원, 60대는 250만원이라는 '스탠더드'도 정해져 있다. 한국인을 쓰면 300만원이 넘어간다. 지속적인 노동시장 축소와 매년 오르는 비용이 겹쳐 '외국인 가사근로자'라는 시범사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펼쳐질 시범사업, 확대될 본사업은 경기도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 외국인 가사근로자, 경기도에 영향은
지난해 전국 혼인건수 19만1천690건 중 경기도에서 일어난 혼인은 5만4천178건으로, 서울(3만5천752건)보다 많은 것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출생아수 역시 전국 24만9천명 탄생에 경기도가 7만5천300명으로 가장 수치가 높았다. 혼인·출생아 통계는 곧 경기도 가사근로자 시장이 가장 크다는 의미다.
정부가 하반기 시작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시범사업은 6개월 동안 진행된다. 가사 근로자 서비스 제공기관에 정부 인증을 부여하고, 기관은 경력·지식·연령·어학능력 등을 검증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 우려가 있는 지원자는 걸러내고 선발된 인력에게 한국 언어·문화·노동법을 교육한 뒤 가정에 투입한다.
처우는 최저임금 적용, 직무는 청소·세탁·주방·가족구성원 양육이다.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부부는 하루 중 일부·하루 종일 등 외국인 가사근로자가 필요한 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다.
24일 현재 정부 인증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은 '가사랑' 홈페이지에 목록이 공개돼 있다. 전체 인증기관 49곳 중 경기도 소재 기관은 19곳으로, 이들 기관 전체에 전화를 걸어 외국인 가사근로자 고용 유무를 확인했다. 그 결과,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기관은 단 2곳이었다.
■ 중국인 배제된 외국인 가사근로자
필리핀 등을 대상으로 한 외국인 가사 근로자 시범사업 전이기에 현재 고용 가능한 외국인은 한국어 소통이 가능한 중국 국적자, 즉 '조선족' 밖에 없다.
인증기관인 D업체는 "한국인만 쓴다. 중국인도 지원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또 다른 D업체 역시 "중국인 가사근로자를 고객들이 선호하지 않아 한국인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기관도 상황은 대동소이했다. K업체는 "내국인 만으로도 가사 근로자 시장은 충분하다"고 했고, H업체는 "고객들이 외국인을 싫어하기 때문에 내국인부터 채용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Y업체는 "내국인 5명, 중국인 2명으로 운영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중국인을)고용해 왔다"고 했고 N업체는 "가사 서비스는 아니고 요양 보호사만 운영하고 있는데 전체 인력 240명 중 중국인이 1명 있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인 가사 근로자는 인증기관을 통하지 않고 대부분 지인 소개나 스스로 공고를 보고 일을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가사 근로자 사업처럼 안정적인 일자리 알선 플랫폼이 없는 것이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의 '이주가사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자료집'(2017)에 따르면 가사노동을 하는 조선족의 70%는 소개소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했고, 고용센터와 외국인 취업기관 등 공식적인 인프라를 거쳐 취업한 사례는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 한정한 외국인 가사 노동자 사업에 대한 중국인의 반발이 크다.
노순자 수원중국동포협회장은 "중국 동포는 주로 영주권을 취득한 F4비자를 가지고 가사 근로자로 일한다. 가사 도우미 사이 커뮤니티가 있어 소개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국 동포는 조상이 한국인이고 말이 통하는 장점이 있는데 필리핀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문화도 언어도 다르다. 일회성 교육으로 한국문화를 배우기 힘들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중국 동포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게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노 회장은 "중국 동포는 H2(방문취업) 비자를 가지고 일하는 남성, F1(방문동거자) 비자를 가진 여성이 아이를 데리고 사는 2가지 경우가 많다. 여성은 거의 30~40대인데 이 사람들이 가사 근로자로 일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내국인 가사 시장 축소…" 한국 노동계의 우려
이번에 시행될 외국인 가사근로자 사업은 비전문취업자 비자인 E9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한국 노동시장에 흡수된 중국인 노동자들뿐 아니라 한국 노동계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최영미 돌봄유니온 위원장은 "정부 정책의 문제점은 실태 조사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외국인 근로자 고용에 관한 법상 수요조사 후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 명시돼 있는데 그런 수요 부분이 파악되지 않았다. 보충성에 맞춰 내국인이 모자라는 부분에 외국인이 투입돼야 한다. 내국인 가사근로자 사이에서도 '지금 있는 일자리를 안정시키고 더 많이 일을 하게 해야 되지 않나', '그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를 얼마나 안다고?'라는 반응이 가장 많이 나온다"고 전했다.
또 "야근수당, 연장수당, 특근수당, 사회보험료(사용자분), 기업이윤 등을 따지면 실제로 월 25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것인데 실제 이만큼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 뿐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대상으로 한부모 가정도 거론하는데 한부모 가정이 쓰기엔 부담이 크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쓰게 될 정책이라면 차라리 노인 요양이나 산모 바우처를 지원하듯 아이돌봄사업을 키우고 가사 서비스 산업 지원을 확대해 내국인 일자리부터 만드는 게 나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 외국인 가사 근로자 사업 성공하려면
외국인 가사 근로자 사업의 또 다른 쟁점은 저출산 극복 효과다. 경제적 양육 부담을 줄임으로써 저출산 대책이 된다는 논리인데 이에 대한 반대 근거도 만만치 않다. 양육할 시간을 부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이다.
정치하는 엄마들 박민아 활동가는 "단축 근무, 노동시간 유연화로 양육 시간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가야 하는데 '너희는 일해라, 아이는 우리(정부)가 책임질게'식으로 나온다. 경제적으로 힘든 가정은 외국인도 고용하기 힘들기에 실효성도 의문"이라면서 "필리핀 가사 근로자에게 영어로만 대화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외국어)교육적 측면인건데 가정은 아이들이 가장 편안하게 있어야 하는 곳인데 영어를 쓰라고 하는 것보다 편하게 있게 해주는 게 더 교육적일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수요자의 입장은 어떨까. 수원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신모씨는 "서울 중구 직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용산이 가깝고 근방에 대사관이 많아서 그런지 인근 거주 부모들이 외국인 시터(가사 근로자)를 쓰는 일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동남아 출신 가사 근로자가 좋다·싫다는 입장은 없다. 다만 신원 보증이 확실해야 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대처 시스템이 확실해야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낯선 외국인과의 공존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2019)에 수록된 단편 '도움의 손길'은 타인인 가사 근로자와 집주인인 주부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가사 근로자가 청소하는 네 시간 남짓 주인공은 집 안에서 공존하는 불편함을 이기지 못해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가사 근로자가 떠난 뒤 침실 베란다 새시를 열어 먼지 청소를 했는지 검사하고 빨래를 '아이세탁' 모드로 돌렸는지 확인한다. 갖은 시험을 통과했지만 배신하는 건 오히려 가사 근로자 쪽이다. 끼니를 챙기지 않는 '새댁'을 탓하며 떠나는 가사 근로자를 뒤로한 주부에겐 묘한 씁쓸함만이 남는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으로 타자가, 그것도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발을 들인다. 저출산 대책과 내국인 노동시장 보호, 경제성과 무용론, 중국인과 동남아시아라는 길항 관계 속에 외국인 가사 근로자 도입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