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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의 국제 콩쿠르 우승. 이 중에는 여성 최초, 아시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수상 이력도 있다.

박규희(사진)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다.

기타리스트이자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교수인 '알바로 피에리'는 "박규희가 연주하면 손가락을 통해 소통의 기적이 일어난다"고 했다. 클래식 기타 거장 '데이비드 러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그녀의 기타는 음악에 빛을 더한다"고 극찬했다. 


女 최초 등 국제콩쿠르 9번 우승
'인천서 운명적 만남' 대가 성장


박규희는 일본 클래식 음악 전문지 '音樂の友'(Ongaku no Tomo)가 매년 선정하는 명연주 리스트(2022 베스트 연주 10)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에 편성되는 악기도 아닌 클래식 기타 연주자가 이 리스트에 들어간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세계적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알렉산더 멜니코프' 등이 박규희와 함께 이름을 올린 연주자들이다. 사실 클래식 기타계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변방이다.

기타의 본고장 스페인 등 유럽을 제외하고 아시아권에서 일본만 하더라도 전문연주자, 동호인 수 등에서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저변이 넓다.

기타리스트가 주인공인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편 소설 '마티네의 끝에서'가 영화화될 정도다. 많은 관객이 스크린 속 주인공의 손에서 빚어지는 바리오스 망고레의 '대성당'을 들으며 클래식 기타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기타 하면 통기타나 일렉트릭 기타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의 한 여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클래식 기타의 비르투오소(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대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녀의 말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제가 만약 인천에서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인천에서 태어난 박규희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잡았다. 인천에서 한국 최초의 기타오케스트라를 만든 리여석 단장과 자유공원에서의 운명적 만남이 다섯 살 박규희를 세계적 기타리스트의 길로 이끌었다. → 관련기사 11면([아임 프롬 인천·(9)] 기타 메고 자유공원 오르던 꼬맹이 박규희입니다)

/임성훈기자 ho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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