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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동 전 교육장이 초임 발령지인 포천 영중초 제자들이 걸어준 현수막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43년 교육여정을 마무리하며 그는 말을 아꼈다. 보람 있고 기쁜 시간, 안타깝고 슬픈 순간을 반복하는 동안 손꼽히는 기억이 몇 개쯤 있을 법한데도 "인터뷰는 하지 말고 나가서 소주나 한잔 하자"며 소리 없이 웃었다.

15890일. 정경동 전 김포교육지원청 교육장이 경기도 8개 시·군, 14개 교육기관에 몸담으며 헌신한 날이다. 공직 40년도 쉽지가 않고, 보통의 교사가 2~4개 시군을 돌다가 퇴직한다는 걸 고려할 때 그의 이력은 전국에서도 희귀한 경험자산이다.

광명 충현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등교 맞이를 하루 앞둔 지난 30일 늦은 오후, 그는 교장실 한쪽 현수막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1981년 영중국민학교 졸업생 일동'이 걸어놓은 것이었다. 옛날 정경동 선생님이 철필로 만들어준 학급문집도 현수막에 첨부돼 있었다.

정 전 교육장은 1980년 포천 영중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상경해 영등포에 거주하던 그는 "축석고개를 넘어가며 온도가 확 낮아지더라"던 그곳에서 하숙과 관사생활을 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던 영중초에서의 3년은 정 전 교육장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담임이 아이들 성장을 전적으로 책임지던 당시, 청년선생님의 열정과 노력을 중년이 된 제자들도 잊지 못하고 있다. 진해(창원)와 나주, 춘천, 화성, 의정부 등지에서 스승의 퇴임길을 지키겠다며 찾아왔다.
15890일… 유례 드문 공직인생 은퇴
경기도 8개 시·군, 14개 기관서 '헌신'
광명북초서 '농구전국대회 3위' 쾌거
특수학급 아이들 위해 자격증 취득도

숱한 정책과 현장 변화 맞닥뜨린 노장
"각자 역할 충실하다보면 서로 빛날것"
넉살 좋은 성격이 아님에도 그는 제자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광명북초에서 농구공을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던 여학생들을 3년간 지도해 전국대회 3위의 쾌거를 이뤘는데 그 과정에서 인근 유한공전과 동일여상, 실업팀 삼성생명까지 아이들을 데려가 머리를 숙여 가며 훈련을 부탁했다.

특수학급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일찍이 특수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한때 특수학급 담임을 맡을 만큼 뒤처진 아이들에게 애정이 깊었다. 최근 퇴직인사를 할 때 특수학급 학부모가 눈물을 쏟기도 했다.

단골 돼지갈비집으로 이어진 인터뷰에서 정 전 교육장은 충현초 생태지도 프로젝트와 도서관 리모델링 계획 등 그저 학교이야기에 잔을 기울였다. 기억나는 제자는 없느냐고 다시 묻자 그는 "어떤 제자가 특별했다기보다는 말썽꾸러기든 모범생이든 교실에서 마주한 모든 제자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며 편안하게 먼 곳을 응시했다.

교육 정책과 학교현장의 변화를 숱하게 맞닥뜨린 백전노장은 그러면서 짧은 한마디를 남겼다.

"군군신신 부부자자. 제나라 경공이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가 해준 말입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의미지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서로를 비추면서 빛이 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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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동 전 교육장은 마지막 임지인 충현초에 대한 책임감을 인터뷰 내내 감추지 못했다. /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