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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상생협력법)'이 통과됐다. 이 개정안에는 중소기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납품대금 연동제'를 시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본회의 종료 직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정안 통과에 대해 의미가 크다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도 했다. 20대 대선에 출마한 윤석열, 이재명 당시 두 후보의 공통공약이 법안으로 마련된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격한 대립을 펼치는 여야가 한마음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모습을 최근 들어 더욱 보기 어려워졌지만, 납품대금 연동제는 예외였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2021년 하반기부터 국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원도급업체(위탁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수탁기업)의 생산비 부담이 커지자,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대됐다.

20대 대통령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는 시점에서 납품대금 연동제가 민생경제, 공정거래의 화두로 떠오르자 후보들은 하나같이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 만에 개정안 시행이 확정되면서, 중소기업계의 오랜 기다림도 결실을 맺었다.

제품·부품 생산비 올라 손실 떠안는 中企
계약 해지 불이익 걱정에 반영 요청 못해

14년만에 법제화… 성공적 안착할지 주목
669개 품목 원재료 거래시 계약 준수해야
안 지키는 원청기업 최대 5천만원 과태료
현장에선 '불공정 관행 개선' 기대감 커져

90일 이내·1억 이하, 연동제 적용 안받아
위탁기업들 악용해 '쪼개기' 꼼수 우려도


중소기업계 '납품단가 제값받기' 기자회견
지난해 4월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 18개 단체가 '납품단가 제값 받기' 기자회견에서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주장하는 피켓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지만 생산비 부담은 하청인 중소기업이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연합뉴스

■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수탁기업 '냉가슴'… 2008년 도입 '납품대금조정협의체'는 무용지물

납품대금 연동제란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간 거래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변동할 경우, 납품 대금에 변동분의 일정 수준을 반영하는 정책이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치솟아 수탁기업의 제품·부품 생산비가 크게 뛰었지만, 위탁기업이 지급하는 납품대금에 생산비 인상분이 반영되지 않아 수탁기업이 손실을 떠안는 사례가 속출했다.

수탁기업 대부분이 중소기업인 만큼 손실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가운데, 납품대금에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하고 싶어도 계약 해지 등 불이익을 우려하는 업체들이 많았다.

불공정 거래에 대한 해결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 논의는 오래전부터 진행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부터 도입이 검토됐지만, 미국발 금융위기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재계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도의 도입을 미루는 대신 '납품대금조정협의체'를 시범 운영하는 것으로 이명박 정부는 이 사안을 매듭지었다.

그러나 협의체 운영 방식에 실효성이 없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 여론이 다시 확산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4~5월 납품대금 조정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수탁기업의 납품대금 조정 요청에 대해 위탁기업이 응하지 않거나 거부된 사례가 48.8%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협의가 진행됐지만 납품 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례도 42.4%에 달했다.

중소기업들이 납품대금 조정을 요청해도 대기업·중견기업이 응하지 않으면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드러난 것이다. 상생협력법 상에 명시된 수탁기업의 범위가 중소기업으로 한정된 것도 '기울어진 협상력'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다.

중기부 납품대금 연동제 협약식
지난해 9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납품대금 연동제 자율추진을 위한 협약식이 열렸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사업에 참여할 기업을 모집했는데,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 등 29개 대기업을 포함해 41개 기업이 사업에 참여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 내달 4일부터 시행… 불공정 관행 개선 기대 크지만 '편법' 우려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납품대금 연동제가 내달 4일부터 시행된다. 납품단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 이상인 원재료에 대해 위탁기업과 수탁기업이 '납품대금 약정서'에 명시된 기준을 토대로 가격을 추가로 반영하는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계약한 물품의 명칭과 원재료, 원재료의 가격 상승·하락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지표, 원자재 가격 변화에 따른 납품대금 반영 범위 등을 위·수탁기업이 협의해 결정하게 돼 있다.

연동 대상이 되는 원재료는 철강류와 비금속, 목재 등 669개 품목이며 해당 재료를 사용하는 제품과 부품, 원료 등을 거래하는 기업들은 약정서에 근거해 납품계약을 준수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는 원청기업에 대해서는 최대 5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올해 12월 31일까지는 계도기간으로 운영해 제도 안착에 집중한다는 게 중소벤처기업부의 방침이다.

14년 만에 법제화한 납품대금 연동제는 과연 성공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당사자인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불공정 관행'을 개선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나온다. 원청기업이 갑의 지위를 이용해 계약을 종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법안을 통해 의무화하면서 중소기업도 협상력이 생긴 것이다.

인천 남동산단에서 방산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 대표 A씨는 "철이나 금속 관련 자재는 1년 사이에도 가격 변동 폭이 큰 편"이라며 "그럼에도 원청기업이 제시하는 단가에 맞출 수밖에 없어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 새로 납품계약을 맺어야 하는 건들이 있는데, 법적 강제성이 생긴 만큼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우려 섞인 반응이 없는 건 아니다. 예외 조항이 악용될 수 있다는 여지 때문이다. 지난 19일 '상생협력법 개정안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는데, 시행령에는 납품대금 연동제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조항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위·수탁기업 간 납품계약기간이 90일 이내이거나, 납품계약이 1억원 이하면 연동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위탁기업들이 이를 악용해 '쪼개기' 식으로 계약기간을 짧게 잡아 연동제 의무를 회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천의 한 자동차 부품 납품 업체 관계자는 "납기가 짧은 제품이나 부품을 납품하는 경우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계약 기간을 예외 조항에 맞게 줄여달라고 하면 (하청은) 피해갈 방법이 없다"며 "한번 90일 이내로 계약하면, 다음 계약은 90일 이상 계약을 하도록 강제하는 등의 장치도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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