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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신소장품전 '지도와 영토'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미술관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가 바로 '연구'다. 미술관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알맞은 소장품을 얻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해 연구하는 일도 여러 상황이 뒷받침돼야 하므로 결코 만만치 않다.

지난 19일에 개막한 경기도미술관 신소장품전 '지도와 영토'는 연구 필요성을 느낀 소장품을 토대로 전시와 연구, 교육이 함께 어우러지며 그 의미를 더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7점의 소장품은 수집 후 일반에 처음 공개되며, 작가들과 유족의 소장품을 더해 지금까지 연구된 부분을 정리하고 조명받지 못했던 작품도 함께 들여다봤다.

첫 공개 7점 등 연구 필요 소장품 조명
정재철, 8개국 걸친 '실크로드 프로젝트'
김건희, 검열·소비사회 괴리 '얼얼덜덜'
민정기, 근대사회 이분화 다룬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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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신소장품전 '지도와 영토'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현대 미술이라는 담론을 하나의 영토라고 생각한다면 작가와 작품은 그곳을 개척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그려낸 지도와도 같다. 또 이렇게 차곡히 쌓여가는 작가들의 노력과 그 결과물이 영토라면 그것을 연구하고 하나의 전시로까지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도로 표현해볼 수도 있다.

전시의 주제인 '지도와 영토'는 김건희, 김정헌, 민정기, 공성훈, 정재철 작가의 작품세계를 그렇게 관통한다.

정재철 작가의 '제3차 실크로드 프로젝트 루트맵 드로잉'은 작가가 2004년부터 7년간 진행한 '실크로드 프로젝트' 중 마지막 프로젝트의 여정을 기록한 작품이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8개의 국가를 거쳐 마지막 영국 런던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프로젝트를 정재철은 비디오와 사진, 일지 등으로 기록했고 전시에서는 이러한 기록들과 당시에 사용했던 햇빛 가리개, 가방, 옷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00년대 초반 서울 인사동의 수많은 갤러리에서 전시 홍보를 위해 과도하게 생산되고 버려지는 현수막에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 작업 동기가 됐는데, 폐 현수막 수집부터 세탁·포장·퍼포먼스·전달·확인·전시 등의 과정을 거쳤다. 세계를 가로지른 작가가 이러한 과정에서 느끼고 행하는 모든 것은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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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미술관 신소장품전 '지도와 영토'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김건희, 김정헌, 민정기 작가는 미술운동단체 '현실과 발언'의 창립 동인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이 작가들의 1980년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김건희 작가의 '얼얼덜덜'은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을 쓴 신문 기사 위에 쭈쭈바 광고 이미지를 덧붙인 작품으로, 대중매체 검열로 인한 억압적인 사회 현실과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유토피아적인 것 사이의 괴리를 드러낸다. 80년대 작품 옆에는 2010년에 복원한 '얼얼덜덜'이 있는데, 이 작품은 당시 기사를 지우기 전 흑백 버전과는 달리 작가가 출품하고자 했던 선명한 작품 그대로를 복원한 것이다.

김정헌 작가는 도시와 농촌의 양극화를 대립적 구조로 표현하며 모순적인 사회 문제를 다뤘다. 작가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작품 속에 대비되는 요소들로 강렬하면서도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또 작가는 자본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의 문구들을 작품에 활용했는데, 정치적·사회적인 부분뿐 아니라 해학적인 부분에서도 작품을 눈여겨보게끔 한다.

민정기 작가는 근대사회를 이분화했던 구조적 문제를 다룬 작가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삶들을 다양하게 드러냈다. 경기도미술관이 소장한 '사람들' 묶음집은 작가가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아연판으로 작업한 열 한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는데, 이렇게 한 권의 판화 묶음집 형태로 전시된 것은 처음이다. 또 이 묶음집 안 작품이 다른 형태로 함께 전시돼 있는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한 장면만으로도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해 온 공성훈 작가는 2000년대 전후로 회화를 주매체로 활동했다. '벽제의 밤-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벽제지역의 풍경과 밤, 개, 눈 등을 나타냈는데, 또렷하진 않지만 어둠과 빛을 통해 명확함을 보여준다. 소외감, 외로움 같은 느낌을 넘어 가상과 실제 사이를 넘나드는 작가의 여러 작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라색으로 칠해진 벽면에 전시된 작품이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임을 나타내고 있어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쉽다. 전시는 내년 3월 24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