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이야기 휴서사2
휴서사를 이끌고 있는 (오른쪽부터) 유준식(62) 극단 허리 대표와 무대 음악을 하는 아들 희오(32)씨, 배우인 딸 희리(31)씨, 회계부터 서무 등 대부분의 안살림을 담당하는 아내 이왕일 실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9.25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의정부시에 특별한 예술공간이 최근 문을 열었다. 휴전선과 서울 사이, 경기북부가 가진 문화적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이름에 나타낸 '휴·서·사'가 바로 그곳이다.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문화예술 환경에, 그것도 민간 영역에서 극장이 개관하는 일도 보기 드물지만, 휴서사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가 일가족이라는 점이다.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유준식(62) 극단 허리 대표와 무대 음악을 하는 아들 희오(32)씨, 배우인 딸 희리(31)씨 등 3명이 휴서사의 공동대표이고, 모친인 이왕일 실장은 회계부터 서무, 홍보마케팅까지 남은 모든 궂은일을 도맡는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 관객이 모두 애인으로 보인다는 유 대표는 예술에 혼을 바친 연극인이다. 90년대 대한민국 2세대 분장사였던 아내 이 실장과는 연극을 매개로 만나 반평생 넘게 같이 걸었다. 이윽고 태어난 남매에겐 극장은 집이자 놀이터였고, 두 명 모두 자연스럽게 이 분야와 관련된 지식과 경력을 쌓게 됐다고 한다. 네 명은 모두 한 극단의 단원이면서 동료이자 스태프로, 때로는 비평가로 함께 한다.

유 대표는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려웠을 것"이라며 "특히 아내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껏 아내와 작품 때문엔 치열하게 다툰 적 있어도, 돈 때문엔 한 번도 싸운 적 없다"면서 "이제 장성해 각자의 세계를 구축한 아이들은 앞으로 문화예술을 이끌어갈 주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집 보증금 날려 무대서 잠 자기도
식구들 직접 꾸며 곳곳에 땀·노력
"예술가 제약없이 맘껏 공연하길"


33년 전 휴서사가 한 극단의 이름으로 시작해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노래하다 이번에 예술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유 대표 가족이 겪은 고난의 역사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쉽지 않은 순수 예술의 길을 걸어오면서 숱하게 위기를 맞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가족은 여러 번 이사 다니는 삶을 살았다. 한때 집 보증금까지 사라져 온 가족이 무대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도 예술을 향한 도전을 멈추지 않은, 그야말로 대단한 열정을 지닌 흔치 않은 가족이다.

유 대표는 "다른 사람이 스트레스 또는 고난이라고 부르는 단어를 나는 영양제라고 여긴다"면서 "그동안 겪은 수많은 경험은 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나에게 축적된 영양제가 미래 세대를 위한 거름으로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7전 8기라는 말이 있는데, 휴서사는 나의 여덟 번째 시도"라면서 "이번만큼은 성공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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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과 서울 사이, 경기북부가 가진 문화적 정체성을 예술로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를 이름에 녹여 낸 예술공간 '휴·서·사'가 최근 의정부에서 문을 열었다. 휴서사를 이끌고 있는 (오른쪽부터) 유준식(62) 극단 허리 대표와 무대 음악을 하는 아들 희오(32)씨, 배우인 딸 희리(31)씨, 회계부터 서무 등 대부분의 안살림을 담당하는 아내 이왕일 실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주변의 후원 속에 만들어진 휴서사엔 이 가족의 땀과 노력이 서려 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용접과 목공 일을 손수 해가면서 유 대표 등은 한동안 버려져 있던 건물의 지하공간을 멋진 소극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앞으로 휴서사는 지역사회의 문화 거점이자, 자유로운 창작의 공간으로 역할을 해나갈 예정이다.

유 대표는 "많은 문화예술이 관 주도로 이뤄지는 시대지만, 그 속에서도 공공이 절대 채우지 못하는 민간예술의 영역이 있다"면서 "예술가들이 어떠한 제약도 없이 마음껏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휴서사의 뿌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전쟁과 분단 등 굴곡의 역사를 겪은 경기북부 주민의 삶에 있다"면서 "교과서에선 알려주지 않는 실체적 진실과 통일에 대한 염원 등을 예술로 녹여내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휴서사는 내년엔 사단법인으로 출범해 더 많은 프로젝트와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 계획이다. 희오씨와 희리씨 두 남매 대표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이유다.

희리 씨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만난 의정부 청년 예술가 대부분이 잠만 이곳에서 자고, 정작 중요한 창작 활동은 멀리 서울에서 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휴서사를 의정부 청년 예술가들의 실험의 장으로 구축해 나가고자 한다.. 청년이 중심이 되면서 민간 예술을 활성화할 수 있는 여러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천에 옮길 생각이니,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바란다"고 밝혔다.

의정부/김도란기자 dora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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