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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경호 개인전 '데드라인 1.5'의 전시 모습. 2023.10.16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기후위기 시대를 맞닥뜨린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경호 개인전 '데드라인 1.5'는 우리 앞에 성큼 다가온 위험과 현실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개인전과 연계해 열린 포럼에서 "지금의 상황은 개구리가 끓는 냄비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과 유사하다"며 집단지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실을 직시하고 지구와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할 때"라며 "개개인의 실천가 되기 운동이 필요하고 이것이 곧 사랑의 실천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른천 너머 지옥 같은 피난 행렬 회화
상승하는 해수면·다가올 미래위기 상징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태와 환경에 대한 생각은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는 작품 '어딘가에' 연작은 바람에 날려 떠다니는 비닐봉지의 모습들이 펼쳐진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분해되지 않은 채 한국을 비롯해 프랑스·홍콩·그리스·러시아·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떠도는 비닐봉지. 쉽게 쓰였다 버려지는 덧없는 것에 대한 상징이자, 없어지지 않고 환경을 병들게 하는 것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또 인류 문명의 발달이 기후위기를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예술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미세 플라스틱은 여러 동물의 몸속에 들어와 쌓이기도 한다. 작품 '봉다리 북극곰'에서 보이는 북극곰의 형상을 한 동물은 비닐봉지와 각종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 마치 곰의 내장처럼 몸속을 가득 채운 봉지와 플라스틱을 안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북극곰은 이내 스러져 부서진다. 유해한 물질들이 고통을 야기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모습이 간결하지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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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작품 '봉다리 북극곰'. 2023.10.16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2층으로 올라가면 파란색 천과 그 너머로 펼쳐져 있는 지옥과 같은 모습의 회화작품이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서 파란 천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상승하는 해수면을 의미한다. 부풀어 올라있는 천을 밟으면 마치 물결이 일렁이듯 움직인다.

평평한 바닥을 밟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불편함은 곧 기후 위기로 찾아올 여러 문제들에 부딪히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도 한다. 천 뒤로 보이는 회화는 인공지능(AI)이 제작한 작품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환경 파괴 비판
개인과제 메시지… 엄미술관 29일까지


작가가 기후위기·사람·지옥·홍수 등과 같은 단어를 입력해 만든 작품은 타오르는 불과 사방에 넘치는 물을 헤치고 걸어나가는 사람들의 피난 행렬로 마치 지옥을 보는 듯하다. 힘없이 축 늘어진 어깨와 걸음걸이 처절하고 지친 사람들의 모습은 무서운 배경과 함께 뒤섞여 무언의 경고를 하고 있다.

반대쪽에서 상영되고 있는 '태양이 뜨거울 때'는 넓은 모래사장에서 펄럭이는 거대한 하얀 천 위로 걸어가는 퍼포먼스로, 이곳에서 보여주는 하얀 천은 빙하가 녹아 물이 됐음을 은유한다.

이 밖에도 '총, 균, 쇠 & 비, 비, 비', '데드라인 1.5' 등 자원의 무분별한 소비로 환경을 변화시킨 인류의 문명을 비판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위기, 우리가 해야 할 일과 실천 의지 등을 되새기게 할 이번 전시는 29일까지 이어진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