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는 대목(大木)과 소목(小木)으로 나뉜다. 대목은 궁궐·사찰·민가 등 집 짓는 일을 하는 사람을, 소목은 장롱·책장·소반 등 가구를 만드는 이를 말한다. 대목 가운데 책임을 지고 일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를 도편수 또는 대목장으로 부른다.
1982년 정부는 대목장을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했다. 제도가 생긴 이후 1991년 신응수, 2000년 최기영·전흥수씨가 대목장으로 지정됐다. 대목장은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최기영(78) 대목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며 최고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지난 16일 인천의 한 공사 현장에서 최기영 대목장을 만났다.
국내 가장 활발히 활동·최고 손꼽혀
단열·방음 탁월 '황장목' 사용 공사
이길여 회장·故 이귀례 이사장 인연
가천문화재단이 연수구 옥련동 가천박물관 인근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짓고 있는 '가천의료사교육관'의 도편수로 인천을 자주 찾고 있다고 한다.
가천박물관은 우리나라 최대 의료사 박물관으로 국보급 유물을 포함한 각종 의료사 관련 유물 1만8천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최기영 대목장은 "가천의료사교육관을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지은 건축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며 "사시사철 조용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최기영 대목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입체 양각이 들어간 익공(翼工)에 단열과 방음 능력이 탁월한 진공 구조로 만든 외벽,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황장목(黃腸木)'을 쓰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흔히 '금강송' '금강소나무'라고 잘못 부르는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바로 황장목이다.
연륜이 오래된 황장목은 나이테가 많고 겉이 붉어 속까지 짙은 황색을 띠어 아름답다. 설악산, 정족산, 금강산 산줄기가 겹치는 강원도 속초 800고지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나무를 가져왔다고 한다.
최기영 대목장은 "강한 곳은 강하고 연한 곳은 또 부드러운 나무로, 색채 또한 좋기 이를 데 없다"면서 "나중에 옻칠을 해서 마무리할 예정인데, 나무를 보면 끌어안고 자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느낌이 좋다"고 설명했다.
최기영 대목장이 이번 공사를 맡은 이유는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과 그의 언니인 고(故) 이귀례 한국차문화협회 명예이사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두 분과의 인연이 좀 깊어요. 제가 도움을 좀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제가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을 하면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특히 이귀례 여사님 도움으로 문화재 기능인들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작품전을 무사히,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어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열일곱 나이부터 60여년 목수의 길
어깨너머 기술 익혀 전국 곳곳 작업
5층 목탑 재현 백제문화단지 '자랑'
충남 예산 출신 최기영 대목장은 1961년부터 지금까지 60년 넘도록 목수의 길을 걷고 있다. 조선 제일의 목수로 불린 김덕희 도편수가 최기영 대목장의 스승이다. 초등학교를 마친 이후 서당에서 구학문을 배우다 열일곱 나이에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목수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목수 일은 철저히 도제식으로 전수됐다. 스승은 거의 절대적 권위를 누리며 제자는 스승의 말씀을 법으로 알고 무조건 복종하며 일을 배워야 했다. 지금이야 교과서가 있고 매뉴얼이 있고 계획에 따라 인력을 양성하지만 당시 목수들이 일하는 곳에는 교과서는 물론, 스승이 제자를 따로 가르치는 일도 드물었다.
선배들이 틈틈이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쉴 틈 없이 일하는 와중에 곁눈질로, 어깨너머로 주워들으며 비법을 익혀야 했다. 밤이 되면 낮에 보고 들은 것을 외우면서 달빛이 드는 땅바닥에 이리저리 도면을 그려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자신이 유난히 눈썰미와 기억력이 좋았다고 했다. 눈과 머리로 일을 배우고 익히는 데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요령도 있었다. 그는 일을 빨리 배우기 위해 선배들의 연장을 일부러 망가트린 일을 들려줬다.
"목수들 연장이 무척 비싸요. 목수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그래서 자기 연장을 다른 이가 만지는 거예요. 그런데 목수들이 바쁘니까 연장을 손질하는 것도 싫어해요. 힘드니까. 그래서 선배들이 밥을 먹으러 가면 몰래 연장을 일부러 망가트렸어요. 그런 뒤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고쳐주겠다고 나서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귀신같이 만들어오거든요. 그렇게 남의 연장으로 일을 배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못된 짓인데요. 이런 걸 착한 도둑질이라고 해도 될는지."
그렇게 일을 배웠고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친 한옥이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영주 부석사 설법전과 회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꼽히는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 통일신라 월성 남쪽 궁성의 통로인 목조 다리 월정교, 순천 송광사 육감정과 약사전, 예산 수덕사 일주문, 오대산 월정사 적광전과 방산굴 등이다. 특히 1천400여년 전 백제 건축 양식인 '하앙식' 기법으로 재현한 부여의 백제문화단지는 최고로 손꼽힌다.
"백제문화단지는 제가 가끔 자랑해요. 지금은 사라진 5층 목탑을 절충식으로 지었어요. 절충식이라는 게 하나하나 끊어졌다는 건데, 그렇게 한층 한층 올렸어요. 5층 목탑이라는 것, 백제시대 건축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는데 기록을 찾아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현했어요. 자화자찬 같지만 천재적 소질이 있지 않으면 지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 짓고는 5층 꼭대기에서 밑에 달음추를 매달아 직각을 재 보는데 1㎝ 조금 못되게 벗어나 있더군요. 정확하다는 거죠. 그걸 붙들고 엉엉 울었어요. 대목장이라는 저의 기능이 참 착한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전통 건축을 하는 대목장으로 요즘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에 아쉬움이 없는지 물었다.
"제가 뭐라 말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건축 양식이라는 것이 결국 그 시대의 기법인데,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된 겁니다. 백제시대에는 백제 사람들이, 조선시대에는 조선 사람들이 편리하게 생각한 것, 추구한 것이 다 그 시대 기법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추구하는 건데 전통을 고집하는 것도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최기영 대목장에게 최고로 꼽는 건축물이 무엇인지도 물었는데,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많은 분이 묻습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늘 이렇게 대답해요. 제가 지금 책임지고 있는 것(건축물)이 최고라고요. 왜냐하면 이 기능이란 게 세월이 갈수록 능숙해지고 단련되고 그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금 짓고 있는 집이 최고지요."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최기영 대목장은?
▲1945년 충남 예산 출생
▲1977년 문화재청 지정 문화재 수리 기능자 목공 제407호
▲200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 인정
▲2003년 (사)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회장
▲200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전수교육관 관장
▲2009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총연합회 회장
▲전북대 한옥건축기술인력양성사업단 석좌교수
▲옥관문화훈장(2004년), 은관문화훈장(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