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801000615700031901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인천애(愛)뜰'(인천시청 앞 광장)을 열어라!"

광장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민주제의 기틀을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곤 했다. '아고라'로 불리는 이 광장에서는 민회(民會)뿐만 아니라 상업·사교 활동 등도 이뤄졌다.

아고라에서 이어진 광장 정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큰 축으로 작용했다. 한국의 광장은 주로 시청이나 도청 등 지방정부 청사 인근에 들어섰다.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면 수십만 명의 국민이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채웠고, 그날 광장의 모습은 언제나 역사 한 페이지에 기록됐다.

인천에도 그런 공간이 있다. 지금의 인천시청 앞 광장은 청사가 구월동으로 이전한 1985년부터 시민 공간으로 활용됐다. 시청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시민의 목소리가 가장 잘 닿는 곳이었다.

광장에서는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노동계의 시정 규탄 시위, 재개발 반대 집회, 마을버스요금 반대 시위, 집창촌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 집회, 어민들의 불법 조업 외국어선 대책 마련 시위 등이 열렸다. 정치인들은 이곳에서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와 천안함 사건 등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순간에는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 시청 앞 광장은 인천 시민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긴 공간인 셈이다.

1985년 이래 각계각층 다양한 목소리 공간
잔디·재산 보호 이유 '시위 금지' 조례 제정

이 광장은 지난 2019년 하반기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인천시는 시청 주차장과 담장을 걷어내고 인천애뜰 광장을 조성했다. 인천애뜰은 공공청사 부지인 '잔디마당'과 일반광장 부지인 '바닥분수', '음악분수' 광장 등으로 구성됐는데, 인천시는 잔디마당에선 원칙적으로 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조례를 만들었다. 인천애뜰 잔디광장은 인천시 재산에 속하기 때문에 관리나 청사 방호, 보안 등을 유지하기 위해 집회를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인천의 시민·사회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개인의 자유와 의사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에서 집회와 시위가 갖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인천시 조례가 '집회 허가제를 금지'하는 헌법을 위반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시와 시민단체들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조례 제정 이후 '인권운동공간 활' 등 여러 단체가 시의 조례를 무시한 채 인천시청 앞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고, 시는 집회를 주도한 활동가를 수사당국에 고발하며 맞섰다.

결국 이 사안에 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에 맡겨졌다.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천지부 등은 같은 해 12월 조례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 8월에는 부평구가 '인천퀴어문화축제'의 부평역 광장 개최를 불허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행정 편의를 위해 제한한다는 지적이 또 제기됐다. 


행정 편의 위해 기본권 일방적 제한 등 지적
"공동체에 의견 표명, 민주사회 구성 핵심"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지난달 26일 '인천애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7조 제1항 제5호에 대해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잔디마당의 장소적 특성을 고려할 때, 집회 장소로 이곳을 선택할 자유는 원칙적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공유재산의 관리나 공공시설의 설치·관리 등의 명목으로 (광장 사용을) 일방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해당 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집회·시위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른 절차를 준수해야 하므로,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하더라도 시청사의 안전과 시민의 자유로운 이용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시민단체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이번 헌법재판소 결정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국가기관에 대해 국정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 목소리를 겸허하게 경청하라는 명령과 다르지 않다"면서 "본 헌법소원 심판 청구인단과 인천지역 시민단체는 헌법재판소의 인천애뜰 조례에 대한 위헌 결정을 환영하며, 인천시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존중할 것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이 공동체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하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본권"이라며 "청사 부지를 비롯해 광장 등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간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통제하기 위해 제·개정된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들은 모두 폐지돼야 함을 천명한다"고 덧붙였다.

소송에 참여했던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천시가 인천애뜰을 만들면서 시민에게 이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했는데, 오히려 집회와 시위가 제한된 모순적인 상황이 이어졌었다"며 "시민들이 모이고, 함께 의견을 나누고, 시에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 등 시민의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번 헌재의 판결 취지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인천지역 18개 시민·사회단체는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 잔디마당에서 1천377일 만에 집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앞으로 위헌 결정이 내려진 조항뿐만 아니라 광장 사용 시 인천시의 허가(허가제)를 받아야 하는 관련 조례 자체를 폐지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 총무과 관계자는 "(광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조항 등) 위헌 결정이 내려진 조항은 조만간 개정할 예정이다. 이르면 오는 12월 시의회에 상정할 방침"이라면서도 "인천애뜰 사용 허가와 관련한 조항은 집회를 제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시의 공공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개정을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202310180100061570003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