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태피스트리' 작업을 했을 때 '손가락으로 했냐, 발가락으로 했냐. 이신자가 자수를 다 망쳐놓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한국 섬유예술의 1세대 작가이자, 국내에서 처음으로 '태피스트리'를 소개하며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예술 영역을 구축해 온 작가 이신자. 반세기에 걸친 그의 작품세계와 한국의 섬유미술사의 발자취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전시 '이신자, 실로 그리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다.
낯선 작품에 대한 비판을 딛고 다양한 섬유 매체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표현 기법을 구축해 온 이신자의 이번 회고전은 한국 섬유예술계에 이정표를 세운 선각자의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기 작품은 재료나 기법적으로 거칠지만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를 보여주는데, 작품 '도시의 이미지'는 천의 올을 풀고 그 올에 색실을 묶어 두께감을 달리했다. 촘촘하면서도 느슨해 보이는 작품의 뒤로 보이는 여백들이 인상적이었고, 하나의 새로운 캔버스를 만들어 낸 듯 각각의 작품이 개성 넘쳤다.
한국 1세대 섬유미술 작가 작품세계
1970년대 '태피스트리' 새로운 시도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기에는 태피스트리를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최초로 국내에 알린 시기와 맞물린다. 할머니의 베틀에서 익힌 직조의 과정을 토대로 틀에 실을 묶어 짜는 최초의 태피스트리 작업을 완성했는데, '숲', '원의 대화 Ⅰ', '어울림' 등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실의 모양과 색·질감 등 무엇하나 단조롭고 정형화된 모습이길 거부하고 있다. 꼬고 묶고 돌리고 풀어내는 여러 표현이 작품 위에 펼쳐져 있는 실의 변주를 엿볼 수 있다.
'한국 섬유미술의 개화기'라 불리는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반 작품은 작업 범위가 한층 넓어지고 보다 자유로워졌다. 이 시기에는 배우자의 사별로 인한 상실과 절망, 생명에 대한 외경, 부활의 의지 등을 붉은색과 검은색의 대비로 담아내고 있다.
또 '전설', '빛의 이미지', '여명' 등 대형 작품이 걸려 있는 공간 사이를 거닐면 마치 붉은 단풍으로 물든 한 자연의 중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시기의 작품은 웅장했고, 광활했으며, 크기로는 담기지 않는 무한함을 느끼게 한다. 또 수묵화처럼 보이는 '한강, 서울의 맥'은 무려 19m에 이르는 대형 작품으로 전시장 중앙에 위치해 눈길을 끈다.

2000년대 작품까지 다룬 마지막 섹션에서는 자연을 관조하는 하나의 창으로 작품에 금속 프레임을 배치했다. 어린 시절 울진에서 아버지와 산에 올라 바라본 자연의 풍경이 확장된 시각들로 스며있다.
실을 꼬고 묶고 돌려 자유롭게 변주
견고한 짜임에 앞·뒤 구분없이 감상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의 뒷부분도 함께 유심히 볼 것을 추천한다. 작품은 뒷면조차 아름답고 정갈하며 견고하다.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꼼꼼한 마무리를 한 작가의 집념과 디테일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 크기와 모양에도 구애받지 않았기에,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이토록 섬유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세계가 다양하다는 사실이 틀에 박힌 사고에 가하는 일침으로 다가온다. 실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움에 압도당하게 되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18일까지 만날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