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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역사는 1974년 1월 강기동 박사가 부천에 한국반도체를 설립하면서 본격화됐다. 내년은 한국 반도체가 50년사를 맞게 되는 시기다. 망백(望百)을 맞는 강 박사의 소망은 50주년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올 1월 한국에 귀국한 후 가족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는 강 박사가 성남시 모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클립아트코리아

아흔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목소리는 힘찼고 두 눈엔 빛이 어려있었다. 머리에 쓴 검정 야구모자 역시 세월을 빗겨간 채였다. 2시간가량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쏟아냈음에도 지친 기색은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반도체를 말할 땐 특히 생기가 더해졌다. 체구는 작지만, 단연 거인이었다.

"이제까지 한국이 1등을 한 게 뭐가 있어요. 반도체밖에 없어요. 지금 한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린 것은 결국 반도체입니다. 한국을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약 50년 전, 한국에 처음 반도체 제조 기술을 선보이며 한국 경제의 성장 속도를 앞당긴 강기동 박사는 2023년에도 변함 없이 미래를 말했다. 그가 내다보는 미래 대한민국에도 여전히 반도체가 중심에 놓여있다.

발열 적어 고도화 유리한 'C-MOS 공정' 개발… 美보다 10여년 앞서
1974년 최초로 '한국반도체' 부천에 설립… 최고 전문가 존재감 부각
본격 4차산업혁명시대 '핵심 먹거리' 피력… "과감한 규제 철폐 절실"

 

■ 한국 반도체의 아버지

=20대의 강기동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다녔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유학했다. 대학시절 대한민국 제1호 아마추어무선통신사 면허증을 취득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공학도가 반도체와 처음 연을 맺은 것은 이 무렵이다.

유학시절에도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반도체 연구소에서 수학하며 석사·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를 토대로 당시 세계 최대의 반도체 회사였던 모토로라에 취직했다. 언어의 장벽, 인종차별 등은 결코 실력을 이길 수 없었다.

모토로라에서도 그는 반도체 관련 특허를 획득하는 등 단연 손꼽히는 기술자였다. 당시 보편적으로 반도체 제조에 쓰이던 N-MOS 공정보다 진화한 C-MOS 공정을 개발한 것도 그였다. 10년여를 앞선 공정을 개발해낸 30대의 강기동이 미국 국방성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반도체가 미래 경제를 이끌 핵심임을 확신한 그는 모국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1974년 1월 26일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 제조 업체인 한국반도체를 부천 도당동에 설립했다. 현재는 미국 반도체 회사 온세미컨덕터 코리아의 공장이 있는 곳이다(온세미컨덕터는 한때 강 박사가 몸담았던 모토로라 반도체 사업부에서 비롯된 회사이기도 하다).

강 박사가 꼭 마흔이 됐을 무렵이었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인 반도체 제조가 부천에서, 40대 강기동의 손에서 시작된 것이다.

 

강기동 박사 공감 인터뷰  (19)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반도체는 삼성에 인수됐고, 그는 회사를 나와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자문하는 등 반도체 최고 전문가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도 그럴것이 '강기동표' C-MOS 공정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제조에 있어 선도적이었던 미국보다도 10년 이상 앞섰던 기술이었다.

반도체를 작게, 그러면서도 고도로 집적화하기 위해선 발열문제를 잡아야 했는데 반도체가 고도화할수록 발열이 적은 C-MOS 공정이 비교적 유리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C-MOS 공정의 선구자인 그는 반도체가 점점 고도화할 것을 고려해, 한국반도체를 중심으로 C-MOS 공정의 안착에 주력했다.

한국과 더불어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난 대만도 당시 이를 눈여겨봤다.

강 박사는 "그때는 기존 N-MOS 공정으로도 웬만한 반도체를 모두 만들 수 있었던 때다. 그래서 더 발전된 공정이긴 하지만 구태여 C-MOS를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고급 반도체일수록 발열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열이 적게 나는 공정으로 가야 해, 제가 개발한 C-MOS 공정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1977년 무렵 대만에서도 와서 저희 공장을 살폈다. 이후 대만도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해 1987년 TSMC를 공기업으로 만들었는데, 그렇게 보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뿐 아니라) TSMC도 한국반도체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 "내 눈으로 '한국 반도체 50주년' 보고 싶어"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에 정착한 40대 후반의 강기동은 그 이후 오랜 시간 반도체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미국 국방성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기에 미국의 군사 기밀을 해외에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어서였다.

그런 그가 한국에 귀국한 것은 90대에 접어든 올해 1월이다. 1974년 한국반도체를 부천에 설립한 지 49년째가 되는 해다. 내년 1월이면 꼭 50주년이다. 경기도에서 움튼 한국 반도체의 역사도 50년을 맞는다.

강 박사는 "한국에 처음 반도체 제조 기술을 이식했지만 여러 과정에서 상처가 컸기 때문에,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엔 반도체엔 다시 손대지 않기로 아내와 약속했었다. 그런데 4년 전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조금씩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내년은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반도체를 제조한 한국반도체가 만들어진 지 50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 반도체도 50년사(史)를 갖게 된다. 반도체는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또 앞으로의 한국의 성장을 견인할 품목이다. 정부에서 나서서 이렇게 의미 있는 반도체 제조의 50주년을 기념했으면 좋겠다. 그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은 게 제 소망이다. 그게 제가 지금 한국에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강기동 박사 공감 인터뷰 추가 사진 (3)

미래 대한민국의 중심에도 단연 반도체가 놓여있을 것이라는 게 강 박사의 믿음이다. '반도체 패권'이 어느 것보다도 강력할 것이라는 점도 역설했다.

강 박사는 "지난해 차량용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 자동차 출고까지 2년 이상이 걸릴 정도였다. 반도체가 없다고 자동차 공장이 멈출 정도다. 지금도 이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보다 본격화되면 반도체 없이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이 될 것"이라며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그렇다. 이를테면 중국의 반도체 수요가 엄청나다. 반도체를 자체 제조하려면 설비가 필요한데 미국에서 수출을 통제해 이를 수급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크다. 다시 말해 한국이 반도체를 수단으로 중국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반도체 패권'을 토대로 한국이 세계 2~3위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상이다.

이에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이 단연 앞서 나가기 위해 과감한 규제 철폐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부연했다.

강 박사는 "'내가 직접 하지 않더라도 내 땅에 와서 하면 내 것이나 다름 없다'는 열린 사고로 접근하면 좀 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선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 해외 기업에서 생산 기지를 만들 때 상대적으로 조건이 좋은 편이다. 이런 점을 앞세워서, 예를 들어 대만이 반도체 기술에서 앞서 있다고 하면 생산 기지를 국내에 유치해야 한다. 10년, 20년이 지나면 그곳 종사자들도 한국에 자연스럽게 정착하고 2세, 3세들은 한국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런 방식으로 쌓인 기술력 등 여러 유·무형의 것들이 결국엔 한국의 자산이 된다. 나아가 남북 통일이 인구 절벽에 내몰린 지금 한국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래 100년을 좌우할 이른바 '100년 지략'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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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100년 지략의 중심에도 반도체가 있다. 그간의 50년을 기념하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90대 강기동은 여전히 깨어 있는, 파릇한 청년이었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강기동 박사는?

▲1934년 함경북도 함흥 출생
▲서울대학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졸업
▲미국 모토로라, 스튜어트 워너 근무
▲1974년 한국반도체 설립
▲1977년 KDK 일렉트로닉스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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