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국내 최고급 담배 '신탄진' 담배 1갑의 가격은 60원이다. 당시 식수원인 팔당호의 수몰지역 토지 보상가격은 3.3㎡당 50~354원 . 신탄진 담배 1갑이면 팔당호 수몰지역 토지 3.3㎡를 살 수 있었다.
수도권 인구 2천600만명의 식수를 담당하는 팔당호.
1966년 팔당댐이 착공되면서 광주시 남종면 등 상류지역의 마을이 수몰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댐에서 가장 가까운 곳인 남종면 우천리는 마을 전체가 물에 잠기며 남종면의 행정구역에서도 사라진 마을이 되었다. 수몰된 면적을 평수로 환산하면 1천487만6천여 ㎡나 된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우천리였으며 우천리 전체가 물 속에 잠겼다.
우천리는 한자로 '소 牛(우) 내 川(천)'이라 쓴다. 그래서 우리말로 읽으면 '소내'가 된다.
우천리에는 아랫소내(마을)와 윗소내(마을)가 있었는데 약 60호 3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했다.
강변에 있던 아랫소내는 가게가 밀집되어 있었고, 윗소내에는 쇠전(우시장)이 번성했으며 1960년대까지만 해도 4일과 9일에는 장시가 열린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들은 나루에서 생업을 이어 갔으며 고기를 잡거나 소를 키우거나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는데 특히 우천리에서 생산하는 많은 채소는 모두 서울에 내다 팔았다.
우천리가 수몰되면서 주민들은 몇 푼의 보상비를 들고 가까운 남종면 분원리나 퇴촌면 천호동 등지로 이주했다.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남종면·퇴촌면 일대의 농토와 마을 14.9㎢가 수몰되었는데 우천리는 당시 언덕이었던 부분이 현재 소내섬(素內島)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다. 소내섬은 우천리에 위치한 한강 팔당호의 섬으로, 남양주 마재 마을 앞에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정약용이 살았던 시절만해도 얕아서 흔히 소내라 불렸다.
당시 팔당호 수몰지역 보상비는 얼마가 지급됐을까.
팔당 수몰지역의 3.3㎡당 토지 보상가격은 50~354원(1973년 10월 기준)이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대책지역 수질보전정책협의회에 따르면 토지 보상 당시 전매청(현 KT&G)에서 생산된 최고급 담배 '신탄진'의 1갑 가격은 60원(1973년 10월 기준)이다.
팔당 수몰지역 중 가장 높은 금액으로 평가를 받은 토지 보상비는 담배 5~6갑인 354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 주민들은 수몰지역 보상비를 '신탄진 담배' 가격에 비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8년 시내버스 요금이 10원, 짜장면이 50원이었다. 신탄진 담배 1갑이면 짜장면을 한 그릇 사 먹고도 남는 돈이었다.
한편 신탄진 담배에 대한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0년 베트남 파병 5주년을 맞아 신탄진 담배 10만갑을 파병장병 위로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60년대 담배는 우리나라 경제 개발 재원 마련을 위한 중요한 세원이었다.
광주/이종우기자 ljw@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