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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예로부터 말을 사육하는 목마장으로 유명한 '말(馬)의 고장'이다. 속담에도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이 나면 제주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한라산 중턱의 드넓은 초원에서 말들이 떼를 지어 여유롭게 풀을 뜯는 '고수목마(古藪牧馬)'의 목가적 풍경이 영주십경(瀛州十景·제주의 아름다운 경관 10곳)의 하나로 꼽힌다.

제주가 대표적인 말의 고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원(元)나라는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후 충렬왕 3년(1277) 제주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고 목호(牧胡·말 키우는 몽골인)를 파견해 말을 기르게 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제주에 국가 관영 목장 10곳이 설치돼 소와 말을 방목해 사육했다.

민간인들도 민영 목장에서 말과 소를 사육하면서 목축업이 번성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이다. 김만일은 임진왜란 때인 선조 27년(1594)부터 정묘호란 전후인 인조 2~6년(1624~1628)까지 수차례에 걸쳐 1천필이 넘는 말을 국가에 헌납했다. 인조는 78세의 김만일에게 명예직인 종1품 숭정대부를 서훈했다. 제주 사람들이 말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도 고려시대 제주에 목마장이 설치되면서부터인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에는 제주 목마장에서 매년 말고기를 포 떠서 말린 '건마육(乾馬肉)'을 임금에게 진상했으며, 연산군은 정기 보충을 위해 말고기 육회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말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조선 세종 때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해 말 도축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평안도에 강제로 이주시킬 정도로 말 도축을 엄격하게 막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질 좋은 제주 말고기를 군수용품으로 쓰기 위해 통조림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말고기의 70% 이상을 제주산이 차지하고 있다. 국내 연도별 말고기 도축 두수를 보면 2020년 1천143마리, 2021년 1천151마리, 2022년 1천501마리 등 3년간 3천795마리인데 이 중 2천989마리(78.7%)가 제주에서 도축됐다.

고려시대 '목마장' 시초… 조선땐 국가 목장 10곳 설치
말린 '건마육' 임금에 진상품… 국내 유통의 70% 차지
지방 적고 단백질·철분 많아… '팔미톨레산' 성분 풍부

녹는점 낮아 '육회' 적합… 구울땐 '레어' 수준 섭취
'경연대회' 다채로운 활용… 육개장·말카츠 등 호응
전문가 참여 '대중화' 심혈… 고급화·인증제 등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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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포화지방산·단백질·철분 풍부한 보양식


=말고기는 끝없이 달리는 말의 특성상 지방 함량이 적은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이다. 특히 불포화지방산인 팔미톨레산이 다른 육류보다 2~3배 많고 단백질과 철분이 풍부하게 함유됐다. 팔미톨레산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 췌장의 기능을 향상시켜 인슐린 분비 기능을 촉진시키는 효능이 있다.

이 외에도 말고기에는 필수 아미노산은 물론 오메가3 성분인 리놀렌산 등의 함유량이 백색육인 닭고기와 오리고기에 비해 3배나 높고 말 뼈에는 글리코겐 함유량이 우유의 4배나 되고 철·인·칼륨·망간 등이 다량 함유돼 있어 골다공증 등에 좋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말고기에 대해 '신경통과 관절염, 빈혈에 효험이 있고 척추질환에 좋다'고 적혀있으며 조선 고종 때의 명의 황필수가 편찬한 의서 '방약합편'에도 '말고기는 몸을 차게 해 흥분을 잘하거나 혈압이 높은 사람에게 효능이 있다'고 했다.

■ 고소하고 담백한 맛…지방 융점 낮아 육회로 적합


=말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익히지 않고 육회로 먹는 것이다. 말의 지방은 융점(녹는점)이 소고기에 비해 훨씬 낮기 때문에 입안에서도 충분히 녹아내려 살코기의 담백한 맛과 함께 지방의 감칠맛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구워 먹을 경우에는 레어로 살짝만 익혀 먹는 것이 좋다. 오래 구울 경우 육즙과 지방이 빠르게 빠져나가 질겨지기 때문이다.

말고기의 내장도 별미다. 제주에서는 간과 내장(검은지름)을 최고로 치는데 제주 속담에는 '말은 간광 검은지름 봥 잡나(말은 간과 내장을 먹기 위해 잡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말의 생간은 마치 배를 씹는 것 같은 아삭아삭한 식감과 감칠맛으로 제주에서는 쇠 간보다 맛있는 부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삶은 내장은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러운 식감과 뛰어난 감칠맛을 자랑한다.

이 외에도 말고기는 불고기와 철판구이, 찜, 조림 등 다양한 요리로도 즐길 수 있다. 뼈로는 곰탕을 해 먹는데 골질이 소나 돼지보다 훨씬 단단해 오랜 시간을 끓여야 한다. 그래서인지 곰탕보다는 엑기스(진액)로 만들어 먹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말고기 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말고기 요리법도 연구되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제주지원은 지난달 14일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열린 제8회 고마로 마문화축제에서 '제주산 말고기 요리 경연대회 및 시식회'를 개최, 제주산 말고기를 활용한 말고기 버거와 고마 육개장, 말카츠, 말고기 김초밥, 말고기 타다끼 등 다양한 요리법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말고기 등심단면

■ 쉽게 즐기기 어려운 말고기…대중성 확보 노력


=해외에서는 말고기가 고급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소나 돼지 등 다른 고기에 비해 대중성이 떨어져 쉽게 접하기 어렵다. 실제 제주에서 도축되는 말고기 대부분이 음식점 위주로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 말고기가 철분 함량이 많아 공기와 접촉하면 고기색이 암적색으로 변색되기 때문에 장기간 냉장육으로 보관·판매하기 어려운 부분도 말고기 대중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제주도는 말고기 산업 전문가가 참여하는 전담팀을 구성·운영하면서 제주 말고기 대중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올해에는 말고기 관련 5개 사업에 13억5천500만원을 투입, 말고기 냉장유통 시스템 구축과 품질 고급화, 전문 비육마 생산목장 설치, 제주 말고기 판매 도지사 인증제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말고기가 음식점이 아닌 소비자들에게 유통될 수 있도록 축협 가공장을 활용해 부위별로 가공한 후 급속 냉동과 진공포장을 거쳐 유통함으로써 일반 판매점에서도 소비자들이 손쉽게 말고기를 구매할 수 있는 유통체계 구축 등을 검토하고 있다.

문경삼 제주특별자치도 농축산식품국장은 "제주산 말고기를 지역 대표 향토음식으로 육성해나가는 등 말고기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주일보=김두영 기자, 사진/제주특별자치도·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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