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로 풍경을 그리는 이부원 작가
40여년 홀로 그림 그려오다 첫 전시회서 100여명 관람객에 작품 선봬
붓 들면 스케치도 없이 2시간 단숨에 완성… 화가 '밥 로스' 유화 공감
폭포 좋아하지만 본 적은 30년 전… 더 아름다운 자연 경관 담는 꿈 꿔

인천 부평에서 화려하고 과감한 색채의 풍경화, 꽃 정물화 20여점이 걸린 전시회가 지난 7일 진행됐다. 이 그림들은 이부원(50) 작가가 왼발로 그려냈다. 40여년간 홀로 그림을 그려온 이 작가는 생애 첫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100여명의 관람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이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중증 지체·지적·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어 소통이 어려운 이 작가와 원활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활동지원사 안근영(69) 목사가 인터뷰에 함께 참여했다.
이 작가는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부산의 보육원에 맡겨진 그는 40여 년간 4~5곳의 장애인 시설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처음 그림 그리는 것을 알게 됐고, 그 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빈 종이와 연필만 있다면 언제든 그림을 그렸다. 30년간 부산에서 살다가 오산으로, 이후 인천으로 자립 생활을 위해 이사했을 때도 그림 그리기를 멈춘 적은 없었다.
2014년 자립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인천에 왔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동료와 1년 동안 생활한 후 2015년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이때부터 8년 동안 거주한 아파트에는 이 작가가 그린 그림이 벽에 가득 붙어 있다. 캔버스에 그려진 작품은 50여 점이지만 집안 가득 쌓인 스케치북의 그림과 그동안 시설을 옮겨다니느라 버려야 했던 그림을 합치면 그가 그동안 그려온 그림은 셀 수 없다.
이 화가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거주 공간이자 작업실이다. 침대 옆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바닥에 캔버스를 두고 왼발로 붓을 잡는다. 그림을 그릴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 물건을 집거나 글씨를 쓸 때에도 왼발을 이용한다. 그는 양손을 모두 움직이지 못하며 검지손가락이 절단된 면이 쓰라려 오른손은 항상 장갑을 끼고 있다.

이 작가는 한 번 붓을 들면 스케치도 없이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단숨에 그림을 완성한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소통을 위해 글씨를 쓸 때는 한 획, 한 획을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지만, 하얀 도화지 위에서 붓을 쥐고 있을 때는 거침이 없었다.
이 화가의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지난 6월 활동지원사 안 목사를 만나면서부터다. 동양화를 배웠던 안 목사는 한눈에 그의 예술적인 감각을 알아봤다고 한다.
안 목사는 "처음에 왔을 때 벽에 가득 그림들이 박스 테이프로 붙어있더라고요. 작은 스케치북에 어린이 색연필로 그린 그림이었지만 과감한 색채 사용을 보고 작품성을 알아봤죠. 예전부터 작품을 잘 보관했으면 좋았을 텐데, 테이프가 붙어 있어 훼손된 작품이 많아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이후 안 목사는 이 작가의 그림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자 전시회를 준비했다. 캔버스를 구매해 전시를 위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작가의 그림을 인터넷에 올리고 인근의 병원,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들의 도움으로 지난 7일 이 작가의 첫 전시회가 열렸다. 안 목사가 소속된 교회의 봉사단체 '새싹문화센터'에서 전시회를 주관하고, 연세백퍼센트병원, 강남브랜드안과,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공간을 제공하고 비용을 지원했다.

이 작가는 전시회가 열린 날을 생각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날 관람객 100여명이 전시회를 찾았고 모두 작품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 작가는 휠체어를 타고 몇 번이고 전시회장을 빙빙 돌며 관람객들이 작품을 구경하는 모습을 바라봤다고 한다.
이 작가의 작품을 구매한 사람도 있었다. '화병에 담긴 꽃'이라는 작품을 판매해 생긴 20만원은 이 작가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힘으로 번 돈이라고 한다. 그는 20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고스란히 넣어뒀다.

이 작가는 앞으로 작품을 판매한 돈을 모아서 일본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10여년 전, 장애인 거주자들과 함께 연극공연을 하기 위해 일본에 간 적이 있던 그는 하얀 눈으로 온 세상이 뒤덮여 있던 일본을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안 목사는 "보통 장애인들은 반복되고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 작가도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어 그동안 시설의 직원들이나 활동지원사가 하자는 대로 살아왔다"며 "전시회를 통해 자신이 뭔가 해냈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엄청 뿌듯해 했고 그 이후에 웃음이 부쩍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주로 유화나 수채화 물감을 이용해 풍경이나 꽃을 그린다. 그의 영감의 원천은 여행이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안 목사와 함께 수원, 화성, 전주 등을 다녔다고 한다. 새롭게 눈에 담은 자연 경관은 그의 개성을 듬뿍 담아 캔버스에 펼쳐낸다.

안타깝게도 휠체어를 탄 이 작가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특히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은 휠체어가 진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바다, 호수, 계곡처럼 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많지 않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 '폭포'를 가장 좋아하지만, 마지막으로 그가 폭포를 본 건 30여년 전 부산에서다.
이 작가는 "가봤던 곳이나 가보고 싶은 곳을 그린다"며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인터넷에서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고 그리기도 한다.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실제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거나, 풍경화 등을 쉽게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서양화가 밥 로스(Bob Ross)의 유튜브 영상을 보내는데 사용한다. 자신처럼 유화를 이용해 차곡차곡 색깔을 쌓아가는 화가 밥 로스를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이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좋아서"라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이 재밌고 좋아서 몇십 년간 누구도 보지 않은 그림을 그려왔다. 안 목사는 이 작가의 두 번째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안 목사와 이 작가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작가의 작품을 보고, 이 작가가 더 넓은 세상을 만나는 2024년을 꿈꾼다고 했다.
글/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부원 작가는?
▲1974년 태어나자마자 부산의 보육원인 신애원에 맡겨졌다. 이후 부산 실로암, 평화의 집 등으로 이동하며 거주하다 2003년 오산의 에바다 장애인 자립 생활센터로 옮겨 지냈다. 2014년부터는 인천에서 자립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6월, 안근영 목사와 만난 후 12월 7일 생애 첫 전시회를 열었다. 또 다른 전시회를 열기 위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