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양력설 ‘신정’을 3일 명절 지정
음력설 ‘구정’ 쇠던 관습 계속되자 1980년대 구정 되살리기 움직임
1989년 신정·구정 명칭 대신 ‘설날’로 고유 이름 되찾아
“신정에 어디 가세요?” “구정에 고향 내려가시나요?”
요즘 MZ세대는 고개를 갸웃거릴 만한 설날의 낯선 이름. 양력설(1월1일)을 뜻하는 ‘신정’과 음력설을 뜻하는 ‘구정’은 모두 우리 민족 대표 명절인 ‘설날’을 말한다. 설날 자체가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날이라는 의미를 지닌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우리 전통으로는 음력으로 날을 세왔던 만큼 음력설을 새해로 보고 설 명절을 보내왔는데, 1949년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며 양력 1월1일, 신정을 3일 설 연휴로 지정했다.
하지만 몸과 머리가 기억하는 관습이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양력·음력 2번 모두 쉴 수 없다는 ‘이중과세’ 원칙에 따라 양력설을 공식적인 설 명절 연휴로 지정한 대신 음력설인 구정은 공휴일로 채택하지 않았지만 생일도 음력으로 지내는 한국인의 DNA에서 쉽사리 음력설인 구정 풍습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1980년대 들어 신정 대신 구정을 진짜 설 명절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1983년 1월4일자 경인일보에는 ‘신정, 설 기분이 안난다’는 기사가 실렸다. 양력과 음력으로 설명절을 두번 세는 ‘이중과세’를 지양하자는 움직임에 따라 그간 양력설인 신정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신정이 더욱 한산해졌다. 이중 과세를 지양하고 신년 명절을 양력설로 일원화하라는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신정보다는 구정을 택하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은 억지로 찾아야 볼 수 있었고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골목에서 노는 모습도 쉽게 볼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설에 임박하여서는 늦은밤까지 김이 잔뜩 서린 방앗간에 줄을 서 흰떡을 해가는 모습이 금년 신정에는 보이지 않았고 제물가게는 찾는 손님도 없이 명절기분이 나지도 않은 채 정초에도 평상시와 같이 영업을 했으며 정육점에서는 구정때보다는 물론, 지난해 신정보다 매상을 반정도밖에 올리지 못했다.
1984년 12월22일자에는 ‘구정 공휴일 지정키로’ 기사가 실렸는데, 이때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설’ 명절 연휴의 시작이다.
정부와 민정당은 내년부터 구정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그 명칭도 ‘조상의날’로 바꾸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당의 고위정책 관계자는 21일 “85년부터 신정연휴는 사흘 그대로 두는 대신 구정을 하룻동안 공휴일로 지정하여 국민적 여망을 수용해나가기로 정부측과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전하고 “신년 원단은 신정으로 정착되어있는 만큼 구정은 경로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조상의날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1985년 2월21일자 경인일보에는 “역시 설 기분이 난다”는 구정, 지금으로 치면 설 명절을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명절은 역시 구정. 금년부터 구정이 ‘민속의날’로 공휴일로 제정됨에 따라 고향을 찾는 수많은 귀성객들은 서울·중부지방에 많은 눈이 내려 큰 불편을 겪었다…각 가정에서는 온가족이 한데모여 조상에 대해 정성스레 차례음식을 차렸으며 웃어른께 세배를 하는 등 구정이 공휴일로 지정된데 대해 밝고 즐거운 마음들이었다.
구정이라 불리다가 조상의날, 민속의날 등으로 바뀌던 설날은 1989년, 고유명칭인 지금의 ‘설날’로 제이름을 찾았다. 1989년 1월14일자 ‘구정 이틀 연휴, 설날 개칭’ 기사에는 이같은 내용이 실렸다.
정부는 구정휴일을 이틀로 연장하는 것을 포함, 현 공휴일로 제도를 전면 재조정할 방침이다…구정을 연휴화하고 대다수 여론에 따라 ‘민속의날’이라는 명칭도 고유명칭인 ‘설날’로 바꾸는 것을 검토, 국민여론 수렴 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서서히 신정과 구정으로 나뉘어 불리던 민족 고유의 명절 ‘설날’은 1998년 신정휴무가 하루로 단축돼 1월 1일, 단 하루만 쉬는 체제로 바뀌며 현재의 설 명절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