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백자는 만들어졌다
서리 '요지 발굴현장' 작업 한창
80m 가마… 6m 높이 쌓인 파편
번성했던 고려 요업 증거 '다수'
'고려 청자', '조선 백자'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도 백자는 만들어졌다. 용인 서리에는 고려 초부터 백자를 생산했던 가마가 있다. 도자를 구웠던 가마의 길이는 약 80m, 깨서 버린 도자의 파편들이 자그마치 6m 높이로 쌓여있다.
가마 주변으로는 불을 땔 수 있는 땔감도 넉넉해야 하고, 도자를 만들 좋은 흙들도 쉽게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은 오래 지속하기 쉽지 않아 새로운 가마가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
용인 서리 가마터의 규모는 다른 가마들과 비교해도 오랜 시간 사용되어 왔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가마는 번성했던 고려 요업의 증거이다.
지난해 11월,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의 발굴 현장을 찾았다. 마른 풀과 흙으로 덮인 둥근 두개의 구릉 옆으로 발굴이 한창이었다. 양쪽으로 불룩하게 솟아있고 가운데가 움푹 파인 형태로 펜스가 둘러쳐진 이곳이 바로 고려 백자가 만들어졌던 가마터이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발굴 현장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자기편과 갑발(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큰 그릇)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파편들은 가마의 양편으로 켜켜이 쌓여 폐기구릉이 됐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이른 시기의 유물이 출토된다. 자기의 생산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다.
가마터는 1960년대 발견돼 1980년대 호암미술관이 3차에 걸쳐 발굴 조사를 했고, 1989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용인시는 서리 고려백자 요지를 종합적으로 정비하고, 역사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자료들이 필요하다고 판단, 2020년부터 새롭게 발굴에 나섰다. 최근까지 5차 발굴이 진행됐는데, 지금은 추운 날씨로 중단한 상태이다.
5차 발굴에서는 가마의 앞쪽과 동쪽 구역을 조사했고, 가마와 관련한 부속시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들이 확인됐다. 현장 발굴 관계자들은 8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으며 중복된 유물을 제외하면 약 370점 정도로, 좋은 유물이 다수 나왔다고 설명했다.
실제 2022년에는 발굴의 성과들이 땅 위로 드러났다. 고려 초기 백자 생산 관련시설과 왕실 제기(제례에 사용되는 그릇 관련 도구)가 출토된 것. 문화재청은 조사지역의 북쪽 건물지 외곽 구덩이 한 곳에서 보와 궤 등의 왕실 제기와 갑발 등 20여 점의 유물이 나왔다고 밝혔다.
대부분 상태가 양호했으며, 완형의 제기가 다량으로 출토된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특히 보와 궤는 중국 송나라 때 출판된 '삼례도'와 '고려도경' 등의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왕실의 제기로, 고려도자 연구는 물론 왕실의 통치철학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이 보와 궤는 경기도자박물관이 지난해 개최한 기획전 '신양제기(新樣祭器): 하늘과 땅을 잇는 도자기'에서 처음으로 관람객들과 만나기도 했다.
경기도에는 이천, 광주, 여주 등 도자 주요 생산지로 잘 알려진 곳들이 있다. 하지만 용인 역시 이들 지역 못지 않게 도자문화 발상지로서 문화재적 가치가 중요한 곳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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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