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백자는 만들어졌다
사적 지적 30년 경과 '존재감' 미약
단순 관광보다 내실 충실히 알려야
市, 현장공개·포럼·학술대회 계획
용인은 도자기를 만드는 흙 중에서도 백토가 나오던 지역으로, 용인 서리 요지는 11세기 한반도 남서부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 청자 생산단지가 운영될 때 차별화를 위한 방안으로 백자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가에서 필요한 백자 제기를 생산한 이곳은 10세기 전반부터 12세기 초까지 약 200년간 사용됐다.
강명호 경기도자박물관장은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한반도에서 도자기가 만들어지게 된 출발점인 곳으로 자기의 산실과도 같다"며 "고려백자 가마터로서는 최대규모로, 흔치 않게 오랜 기간 사용됐다. 용인은 천년 도자기 역사의 시작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용인 서리 요지는 고려 초기 자기생산의 시작과 이후 발전 과정까지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제기 집중노출지역, 기와를 사용한 지붕을 가지는 대규모 건물지, 10세기 전반쯤으로 추정되는 선해무리굽완이 다량으로 출토된 폐기장의 존재 등은 이 곳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요업단지였음을 뜻한다.
올해는 폐기구릉을 본격적으로 발굴할 계획을 가지고 있어, 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재확인할 중요한 단서를 추가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 용인 서리 요지는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적으로 지정된 지 30년이 훌쩍 지났지만, 도자기로 유명한 다른 지역들과 비교했을 때 그 존재감을 여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중요한 지역의 유적 또는 유물을 어떻게 알리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유홍준 교수의 책 '국토박물관 순례'에는 유 교수가 연천 전곡리 선사유적지와 관련해 김규배 당시 연천군수에게 연천군민들을 대상으로 전곡리 유적지에 대한 강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요청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유적지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그곳 문화재에 대한 주민들의 명확한 인식과 자부심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김기섭 전 경기도박물관장은 "백자가 청자보다 기술적·경제적으로 많은 것이 투여됨에도 고려시대에 백자를 만들다 청자가 유행하게 된 것은 시대상이다"라며 "기술이 발전한다고 다 유행하는 게 아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한 역사적 의미를 포함해 유적에 대한 여러 해석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필요하다"면서 "지역이 가진 역사적 자산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교육 장치와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적의 활용을 관광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김 전 관장은 "시에서도 학자들과 함께 포럼을 열어 시민들과 대중에게 유적을 알리고, 지역의 역사를 다루는 과정을 많이 거쳐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며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닌 내실을 다지는 데 충실하면 관광과 같은 효과들도 부수적으로 따라오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인시는 발굴 진행 상황을 살펴 보면서 추후 현장을 공개하고, 포럼이나 학술대회 등도 진행할 계획을 밝혔다.
용인시 이서현 학예연구사는 유적의 활용방안과 관련해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용인이 도자기의 발상지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적으로 용인의 대표 핵심 콘텐츠로서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한 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은 반드시 추진해야 할 사업"이라고 전했다.
이를 통해 유적 자체에 대한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도자문화 발상지 용인'으로서 용인시의 도시 브랜드를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또 "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이 완성돼 안정적 운영 단계에 접어들면 용인의 도자문화 확산과 발전을 위해 도자사업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