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능력 사라진, 위기의 인천시의회
허식, 취임 직후부터 문제 발언
경찰·미추홀구 비하 잇단 '설화'
제대로 충고·견제 못해 화 키워
"시의원 대표가 되레 갈등 유발"
윤리·행동 강령 등 보강 의견도
허식 인천시의회 의장이 말실수 등으로 잇따른 구설에 휘말리며 의장직을 더는 수행하지 못할 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 동료 의원이기도 한 허 의장을 제대로 충고하거나 견제하지 못해 인천시의회 전체로 확대되는 위기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시의회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허식 의장 '문제 발언'은 취임 직후부터 시작됐다. 바꿔말하면 이를 바로잡을 기회가 수차례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2022년 7월에는 현 정부의 경찰국 신설과 관련해 자신의 SNS에 '문재인부터 잡아넣어라. 가능한 모든 수단 동원해 구속해라. 경찰 나부랭이들, 그때도 까불면 전부 형사처벌해라. 이건 내전 상황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경찰에 공식 사과했다.
지난해 3월1일 동인천 북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 인사말에서는 "무조건 친일, 반일로 몰아가는 역사 교육을 재고해야 한다"는 행사와 어울리지 않는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 같은 해 10월31일에는 인천시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제2회 세계를 품은 인천교육 한마당' 개막식 축사에서 "인천교육이 교묘히 공산주의를 교육시키고 있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12월19일 상상플랫폼에서 열린 '제물포 르네상스 대시민 보고회'에선 지인의 발언을 인용해 "청라 살다가 미추홀구로 이사 왔는데 다시 청라나 송도로 가야겠다고 했다"면서 "애들이 초등학생인데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는 미추홀구 비하 발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동료 의원들도 내부적으로 의장의 돌발 언행을 제지할 자정 기회를 놓쳤다는 데 수긍한다. 의장의 잇따른 문제 언행을 두고 윤리특별위원회 가동 등 자율적으로 시의회 위상을 정립할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한 시의원은 "의장에게 공식 항의했을 때 자칫 외부에서는 여야 간 갈등 구도로 비칠 수 있다고 판단해 조심스러웠다"며 "여러 차례 내부적으로만 부적절한 언행을 삼가달라고 지적했는데, 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지역 정당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할 국민의힘 인천시당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인천시당은 광역·기초의회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지역과 중앙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하지만, 사실상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원하는 부속 기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국민의힘 인천시당 관계자는 "시당 차원에서 시의회 의원들과 교류하지만, 의장의 돌발 행동을 제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인천시당은 7일 윤리위원회를 열어 허 의장에 대한 징계를 논의했다. 회의 직후 허 의장이 탈당계를 제출하며 사안은 일단락됐으나, 시의회 차원의 징계 논의는 남아있다.
허 의장은 최근 5·18 민주화운동이 DJ(김대중)세력·북이 주도한 내란이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 신문사의 '5·18 특별판' 신문을 다수의 시의원실에 배포해 5·18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을 자초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윤리·행동강령 등을 보강해 막말을 근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인천시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를 보면 금품수수, 인사청탁, 성희롱 등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번 허 의장과 같은 사안을 다루지는 않는다. 의원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기만 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중앙정치와 차별화한 지역 고유의 논의를 보여주는 정치 풍토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인천 정치계 한 인사는 "300만 시민을 대표하는 시의회 의장은 중앙정치에 물들지 않고 지역 정책에 입각한 생활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의장의 행태가 결국 시민들의 지방의회 불신을 자초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든다"며 "시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의원 대표가 분쟁·다툼을 조정하는 게 아닌 되레 갈등을 유발하는 모습은 시민들이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의회의 제도 보완과 자정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성호·박현주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