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박물관 '대사극장' 기획전시
박세영 감독 작품, 100편 풀어내
박철희 '살풀이 한판' 레터링 표현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영화 대사 한 줄 정도는 있을 것이다.
때로는 배우들의 연기보다 오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때로는 유행어가 되어 어렵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기도 한 대사로 약 80년의 한국 영화사를 조명하는 전시가 개막했다.
한국영화박물관의 새로운 기획전시 '대사극장-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은 한 시대의 언어 습관을 반영한 무의식의 기록이자, 최근 대중 문화에서 관심의 영역으로 떠오르며 소비되는 영화 속 대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시는 영화 속에서 발화하고 흩어진 대사를 가상의 극장 공간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영상 작품으로 재구성해 연속 상영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시작은 걸출한 장르영화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는 박세영 감독이 연출과 편집을 맡은 작품 '대사극장'으로, 1954년 '운명의 손'부터 2023년 '다음 소희'까지 100편의 영화 속 대사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풀어낸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한글에 새로운 시각 언어를 입히는 레터링 작업과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해온 박철희 작가의 '살풀이 한판'은 25개의 명주천 모양 모듈로 영화 대사 가운데 욕설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명주천을 던져 떨어지는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살풀이 춤에서 영감을 받았다.
양으뜸 작가는 한국영화에서 발화자가 여성인 대사 또는 여성을 향한 대사만을 짜깁기한 '독백 집단'을 선보인다. 각기 다른 영화 속 개별 대사들이 서로 대화하듯 구성된 꾸러미 형태로 여성의 가치, 능력과 본성, 부정적 감정과 체념, 욕망과 관계, 험담과 죽음을 다룬다.

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가 작업한 '타이틀: 99개의 의문문'은 한국영화 속 의문형 대사만 모았다. 스크린 속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집단·사회·국가와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사들은 개인에 대한 질문부터 이념과 체제까지 다양한 질문을 관람객에게 던진다.
이와 함께 이동언 작가는 '삶적인 하나, 죽음적인 하나, 그리고 인생의 하나'라는 작품을 통해 대사를 뱉어내는 입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마지막 공간에는 관람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대사를 즐길 수 있는 라운지가 마련돼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 50년간 수집하고 보존한 시나리오 약 400권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1천개 영화 대사 데이터베이스가 준비돼 있다. 이번 전시는 5월 18일까지 계속된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