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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이자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안톤 브루크너. /위키피디아 제공

[이슈&스토리] 탄생 200주년 맞은 브루크너, 올해 음악계의 화두로


WPO 신년음악회, 2부 후반부 '카드리유' 관현악 버전 연주로 꾸며 눈길
지휘봉 잡은 틸레만, 단일 지휘자로 교향곡 전집 녹음 기념비적 결과물
작곡가, 13세 성가대원·24세 오르가니스트 등 성당서 음악의 근간 형성
이병욱이 지휘하는 인천시향 4월26일·5월17일 교향곡 7·8번 각각 선봬
부천필·KBS교향악단·서울시향 줄지어… 전무후무 장엄한 사운드 묘미


올해 첫날도 어김없이 오스트리아 빈은 왈츠의 열기에 휩싸였다. 누구나 알고 공감하면서 즐기는 대표 클래식 이벤트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WPO) 신년음악회'가 이달 1일 오전 11시(현지시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날 오후 7시 전국의 메가박스 상영관에서 생중계됐다.

WPO는 올해도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2세, 요제프 슈트라우스 등이 작곡한 왈츠와 폴카, 행진곡 등 리드미컬하면서 선율미도 갖춘 음악들로 신년음악회를 꾸몄다.

프로그램 노트에서 눈길을 끈 건 연주회 2부 후반부에 예정된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카드리유(Quadrille), WAB 121' 관현악 버전이었다. 피아노 연탄(聯彈)용으로 작곡된 원곡을 볼프강 되르너가 편곡했다. '카드리유'는 4쌍 이상의 사람들이 네모꼴을 이루며 추는 춤인데, 무도회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평소 신년음악회에서 접할 수 없었던 브루크너의 작품으로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려는 의도로 읽혔다.

지휘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맡았다. 상임지휘자 제도를 두지 않는 WPO는 올해 신년음악회의 지휘봉을 최근까지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을 함께 완성한 틸레만에게 맡겼다. 틸레만은 2020년부터 WPO와 브루크너의 11개 교향곡(00번~9번) 전곡 녹음에 돌입했고,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에 맞춰서 완성한 거였다.

19세기에 브루크너의 교향곡 3번과 6번, 8번을 초연한 WPO이지만, 지금까지 단일 지휘자와 이 작곡가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지 않았다. 틸레만과 이번 녹음은 WPO에게도 기념비적 결과물이다.

매해 WPO는 신년음악회 1부와 2부 사이에 미리 제작한 영상을 보여준다. 오스트리아의 유네스코 유산 영상을 보여주는 등 이를 통해 음악 여행을 떠나도록 돕는데, 올해 신년음악회에선 탄생 200주년을 맞은 브루크너의 발자취를 좇았다. 영상은 성 플로리안 성당 소년합창단의 소년 2명이 브루크너와 관련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오스트리아 린츠 인근의 안스펠덴에서 태어난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성 플로리안 성당에 종종 갔다. 높이 솟은 탑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바로크 건축 양식의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1771년에 제작된 이 명품 오르간은 현재 '브루크너 오르간'으로 불린다)은 어린 브루크너에게 종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3세에 이 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고, 24세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는 등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보낸 17년은 브루크너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영상에선 브루크너가 작곡한 오르간 곡이 울려 퍼지고, 빼어난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이어서 영상은 브루크너 협회가 위치한 린츠로 향한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선율과 함께 린츠의 모습이 이어지고 브루크너가 묻힌 성 플로리안 성당의 오르간 밑의 관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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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브루크너가 오르간 연주자로 일한 린츠의 옛 대성당. /Linz Tourismus 제공

WPO 신년음악회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 세계 음악계의 화두는 '브루크너'이다. 틸레만을 비롯해 안드리스 넬손스, 야닉 네제 세갱, 프란츠 벨저 뫼스트를 비롯한 세계 정상급 지휘자들은 브루크너 음악을 콘서트 무대에 올리고 레코딩할 예정이다.

흔히들 음악사에서 성이 B로 시작하는 작곡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를 '3B'로 지칭한다. 혹자는 베토벤과 말러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받는 브루크너를 브람스 대신 포함하기도 한다. 적어도 올해는 '3B'의 한 명으로 브루크너를 포함해도 무방할 듯싶다.

올해 국내에서도 인천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한 오케스트라들이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정점에 있는 이 위대한 작곡가를 조명한다.

이병욱이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은 오는 4월 26일과 5월 17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열릴 제421회와 422회 정기연주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과 8번을 각각 연주한다. 인천시향은 2017년 4월에 열린 제362회 정기연주회에서 당시 예술감독인 정치용의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선보였다.

1966년 창단한 인천시향의 첫 브루크너 연주였다. 정치용 예술감독 사임 후 2018년 9월 인천시향 예술감독에 부임한 이병욱은 당시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인천시향과 브루크너의 후기 교향곡들을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병욱 예술감독과 인천시향은 2022년 제401회 정기연주회에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을 연주했으며, 그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교향악 축제 때도 이 작품을 음악팬들에게 선사했다. 인천시향은 올해 브루크너 기념해를 맞아 7번과 8번을 연이어 올리는 것이다. 특히 교향악 예술의 최고봉을 이루는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경우 인천시향의 첫 연주여서 인천 음악 애호가들의 관심이 벌써부터 쏠린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도 오는 2월 28일 부천아트센터에서 홍석원의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을 연주한다. 이와 함께 KBS 교향악단은 7월 18일 예술의전당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9월 27일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교향곡 5번을 올린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올해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한 야프 판 즈베던의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12월 12~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브루크너 음악의 묘미는 무얼까. 꾸준히 오랜 시간 음미해야 그 묘미를 알 수 있다는 점은 브루크너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요소다. 하지만 거대한 성당과 장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악상과 숭고한 아다지오 악장, 압도적인 피날레 악장을 갖춘 그의 음악 구조와 이를 전개하는 음악 어법을 이해하는 순간 최애 작곡가로 변모한다.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으며, 오르간 사운드를 관현악으로 구현하려 한 요소도 염두에 두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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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 음악을 간명하면서도 탁월히 정의한 두 견해를 소개하면서 마무리한다. 말러의 제자이자 20세기 위대한 지휘자 브루노 발터는 생전에 "말러는 신을 찾기 위해 계속 방황한 반면 브루크너는 이미 찾았다. 그의 음악에는 신이 살아있다"고 평가했다.

음악평론가 최은규는 저서 '교향곡'에서 "특유의 우주적인 소리는 종교적 신비와 신을 향한 경외감으로 인도한다"며 "전무후무한 장엄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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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체코의 베르드지흐 스메타나(1824~1884) 역시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다.

12음기법의 창시자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와 관현악 모음곡 '행성'의 영국 작곡가 거스테이브 홀스트(1874~1934), 미국 모더니즘 음악을 개척한 찰스 아이브스(1874~1954)는 탄생 150주년을 맞는다.

이들 작곡가에 대한 다양한 이벤트들로 인해 클래식 음악의 열기가 1년 내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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