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두 세계 사이에서
'위장취업' 우정과 죄책감 사이에 선 주인공
'르포르타주', 어떤 사회현상에 대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서술하는 기록 방식. 흔히 '르포'라고 불린다. 기록자의 관점이 진하게 담긴 르포는 나와 타인,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다. 바로 옆에서 생생히 체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하는 르포는 매력적이나 위험하기도 하다. 좋은 답변을 얻기 위해 기록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 취재 대상자 입에서 제삼자가 절절히 공감할 만큼의 답변이 나오도록 이끌어내려면 끈끈한 유대관계는 필수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포스터)'는 이런 르포의 딜레마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고용불안'과 관련한 신작을 쓰기 위해 청소 노동자로 위장 취업한 주인공 '마리안'의 이야기를 다룬다. 저명한 르포 작가인 마리안은 정체를 숨긴 채 수개월 동안 청소 노동자로 일하며 동료들과 일상을 공유하고 우정을 다져간다.
동료들과 가까워질수록 마리안의 취재 수첩은 빼곡해진다. 같이 변기를 닦고, 이불 커버를 갈아 끼우면서 쌓은 유대감은 점점 죄책감을 향해간다. 동료의 가족 모임에 초대받기도 하고, 동료의 자녀들에게 생일을 축하받기도 한다. 애틋한 감정이 피어날 때마다 마리안은 밖으로 달려나간다. 그러고선 펜을 들고 감동의 순간 들었던 멘트를 기록한다. 나중에 고스란히 책으로 옮겨질 '글감'이다.
다른 세계에서 맛본 소소한 행복은 당연하게도 지속될 수 없었다. 거짓된 삶으로 우정을 쌓아올린 마리안이 이 가짜 우정을 소유하려는 욕심을 품은 순간, 진실이 드러난다. 비로소 마리안은 자신의 진짜 삶으로 도망치듯 넘어온다.
처음부터 그랬듯 두 세계는 나뉜 상태 그대로다. 대신 마리안의 글은 두 세계를 오가는 튼튼한 징검다리를 세웠다.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그 어떤 인물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못한 채 영화는 끝난다.
세상 그 누구가 자신의 삶을 함부로 글감 삼으려 하는 자를 환영할까. 르포의 윤리문제는 여기서 피어난다. 기록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다른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 거짓된 삶을 토대로 쌓은 우정과 신뢰는 질문을 향한 경계를 무장해제시킨다. 그렇다면 부정한 방식으로 얻어낸 이야기가 제삼자에게 감동을 주고,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향한 연대를 이끌어낸다면 과연 괜찮을까.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