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 부적합… 아이키우기 열악

인천역 등 복합쇠퇴지수 상위 30%
"지하화되면 구도심 재생 이룰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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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로 인한 지역 단절 피해는 인천의 해묵은 현안이다.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이 4·10 총선을 앞두고 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철도·도로시설의 지하화를 언급하며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경인전철 도화역과 주안역 구간 철길 위로 인천대로(옛 경인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현장 사진. 2024.1.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이 4·10 총선을 앞두고 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치권이 의제를 주도한 예전과 다르다. 여야는 물론 정부와 지방정부 등 광범위하게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차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5일 민생토론회에서 "도로와 철도로 단절된 도시 공간을 지하화해서 국민들께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경인고속도로 등 "지하 고속도로 사업을 임기 내에 단계적으로 착공하겠다"고 했고, 철도 지하화는 "준비된 구간과 지자체부터 선도 사업지구를 선정하겠다"고 했다.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 지하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분위기다.

경인전철과 경인고속도로는 우리나라 산업화를 견인하는 중추적 역할을 했다. 그사이 인천은 '지역 단절'이라는 피해를 감내해야 했다. 인천의 허리가 끊긴 것은 철도로 100년, 고속도로로 반세기가 넘었다.

단절로 인한 피해를 감내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이가 많다. 소음·진동·분진 등의 피해는 기본, 사람도 차도 눈앞에 보이는 지척을 멀리 돌아간다. 경인전철과 경인고속도로 주변의 상권이 무너졌고 슬럼화한 지 오래다. 지하화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현 인천시민이 겪는 문제를 입체적으로 살펴봤다.

지난 26일 오전 10시께 백운고가교. 곽병숙(66)씨가 한쪽 발에 깁스를 한 채 절룩거리며 백운고가 보도를 이용해 철길을 건너고 있었다.

곽씨는 "집은 철길 북쪽인데, 병원은 반대편이다. 몸이 아프니 철길이 더 원망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철길만 없으면 바로 코앞인데, 그렇다고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가깝고 시간이 더 걸려 걷는 게 차라리 속편하다"고 했다.

경인전철 백운역 일대는 철도와 고가도로 때문에 수많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이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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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로 인한 지역 단절 피해는 인천의 해묵은 현안이다.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이 4·10 총선을 앞두고 또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철도·도로시설의 지하화를 언급하며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경인전철 도화역과 주안역 구간 철길 위로 인천대로(옛 경인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는 현장 사진. 2024.1.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고속도로 주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슷한 시각 경인고속도로 서인천IC 인근 부평구 청천동 한 200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를 찾아갔다. 단지 바로 옆 발코니에서 불과 10m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아파트 건물과 나란히 경인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고속도로가 평지보다 5~6m 높이 솟아 있는데, 게다가 방음벽이 설치돼 경인고속도로가 마치 거대한 성벽처럼 보였다. 아파트와 맞닿은 경인고속도로 주변 통행로는 한낮에도 음침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경인고속도로 때문에 생긴 막다른 곳이다 보니 이곳을 지나는 차량도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경인고속도로 옹벽에는 '압류차·저당차·부도차 고민 해결' '일일 상환 대출' 등 불법 광고물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곳 단지에서 만난 주민 김모(63)씨는 "주거지로 부적합한 환경이다 보니 주민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보다는 공업시설이 주로 들어서고 있다"며 "아이를 키우는 집은 집을 내놓아도 잘 안 팔린다고 하소연한다"고 했다.

현재 '인천대로'라 불리는 옛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구간 주변도 마찬가지다. 인천 미추홀구 인천기계공고 후문(주안동 609-1번지) 일대 주민들 역시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도로 때문에 생활 전반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수봉산이 있는 인천대로 북쪽에서 인천기계공고 방면으로 오는 도로는 길이 30m, 폭 8m의 교량이 전부다. 차량 2대가 가까스로 다닐 수 있는 너비다. 사람이 건너는 인도는 너비 1m도 채 안 된다. 이 동네에서 30여 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이 동네 모든 길은 차와 사람이 뒤엉켜 함께 다닌다"며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교량과 이어지는 주변 길 역시 폭이 7m가 채 안 된다. 여기에 인천대로 방음벽을 따라 주차 공간이 만들어져 있어, 도로 양방향으로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지날 수 없는 구조다. 대중교통은 일반 시내버스보다 크기가 작은 인천e음버스만 겨우 다닌다.

도화IC 인근부터 인천대로 기점인 용현동 일대 인천IC까지 약 3.6㎞ 구간은 도시를 남북으로 가르고 있다. 이 구간에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육교와 지하보도는 각 2개뿐이다. 그나마 있는 육교 하부와 지하보도 인근 곳곳은 불법 투기된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또 다른 주민은 "최근 CCTV가 많이 설치됐지만 길도 어둡고 여전히 우범지대가 많다"며 "밤에도 저 길(인천대로)에 차들이 쌩쌩 다닌다. 여름철엔 소음과 먼지로 창문을 열지 못한다"고 했다.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에 의한 단절 문제 해소는 인천의 해묵은 숙제다. 지하화 사업이 지연되는 동안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 일대는 갈수록 침체의 길을 걸었다. 옹벽·방음벽을 해체해 단절 문제를 해소하는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은 지난해 5월에야 착공했다.

인천연구원이 지난 2016년 인천의 복합쇠퇴지수(도시 쇠퇴 정도)를 분석한 결과, 경인전철 인천 구간 주요 역세권인 인천역·주안역·부평역 등 일대가 복합쇠퇴지수 상위 30%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다.

조상운 인천연구원 도시공간연구부장은 "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는 단순히 그 인근 지역뿐 아니라 인천 구도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철도와 고속도로가 도심 지상 한가운데를 지나는 사례는 별로 없다"며 "국가기반시설(경인전철·경인고속도로)기능 재편이 필수다. 지하화가 이뤄지면 궁극적인 구도심 재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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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조경욱·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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