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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이동갈비

■ 포천 이동갈비

제대로 갈비 뜯으려면 포천으로 '이동'


갈빗살에 칼집을 넣어 넓게 편 다음 양념장에 재워두었다가 숯불에 구운 것이 특징이다. 갈비와 갈비의 나머지 살을 이쑤시개에 꽂아서 만드는 이동갈비는 포천시 이동면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동갈비'라는 명칭은 30여 년 전부터 이동에서 이동갈비의 원조로 식당을 운영해 온 이영구 씨의 부친인 이인규 씨가 고장의 이름을 따서 '이동갈비'라고 이름 붙인 데서 유래했다.

용인 백암순대마을

■ 용인 백암순대국

속이 꽉찬 순대, 배가 꽉차도록 '든든'


120년 역사가 있는 용인 백암면 5일장에서 시작됐다. 소를 팔고 돌아가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던 것이 순대국밥이다. 고기가 흔했던 백암장터의 아낙들이 모여 함께 순대를 만들고 돼지 국물을 부어 팔았던 것이 팔도 장사꾼들에 의해 전국으로 소문이 번지며 유명해졌다.

백암순대는 다른 지역의 순대보다 야채가 훨씬 많고 순대 소가 성글고 거칠었는데, 이는 아무리 소를 키우고 돼지를 쳐도 고기 한 점 맛보기 힘든 장터 사람들에게 고기 씹는 행복과 포만감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한 장터 인심이었다. 10여년 전 우시장은 사라졌지만, 백암순대의 명성만은 그대로 남아 순대 한 그릇에 행복해 했던 그 시절 낭만을 느끼게 해준다.

의정부 부대찌개

■ 의정부 부대찌개

무조건 숟가락 돌격 '의정부 상륙작전'


그대로 해석하면 '군부대의 찌개'다. 한국전쟁 직후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전쟁을 위해 군부대만큼은 먹을 것이 풍족했다. 미군기지는 본국에서 보내온 음식이 넘쳤다. 핫도그와 깡통에 든 햄, 소시지는 한국인들에게 낯선 음식이었지만 가릴 것 없던 시절 우리 입맛에 맞춰 먹는 방법을 연구한 결과 탄생한 것이 부대찌개다.

처음에는 '부대'란 이름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어 공식적으로는 '명물찌개'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미군부대가 밀집돼 재료 구하기가 쉬웠던 의정부에서 가장 빨리 퍼졌고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간혹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존슨 대통령이 미군기지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부대찌개를 맛보고 최고의 맛이라 호평했던 것이 유래라는 말도 있고, 미국에서 흔한 이름이 '존슨'이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옥천냉면

■ 양평 옥천냉면

'평양'냉면과 다른 신세계 '양평'으로…


1952년 황해식당으로 시작한 '옥천냉면'은 살얼음 동동 띄운 국물에 찰랑거리는 면발의 느낌이 좋아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도 많이 찾는 냉면집이다.

한국전쟁 때 피란 온 고(故) 김순덕씨가 황해도식 냉면과 완자, 편육 세 가지 메뉴로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은 지명에 따라 '옥천냉면'으로 부른다. 면발은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 쫄깃한 식감을 자랑한다. 돼지고기만을 사용해 오랜 시간 우려낸 육수는 잡내가 없어 깔끔함이 일품이다.

맛집을 찾아서_평택 비전동 석일식당 간장게장 사진

■ 평택 간장게장

이런 밥도둑, 우리집 냉장고에 무기징역


간장게장은 한국의 전통적인 해산물 요리로 게를 간장과 함께 조리하는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다. 게를 간장과 함께 조리하면 게의 풍미가 더욱 돋보이고 간장의 진한 맛과 조화를 이뤄 한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다.

한국 음식의 오랜 역사와 해양문화 등이 깊게 연관돼 있는데, 기록으로 보면 조선시대(1392~1910년)에 처음 등장했다. 특히 평택을 비롯한 한국의 해안 지역에서는 신선한 게를 얻기 쉬워서 간장게장이 더욱 발전해 대를 잇는 간장게장 맛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천서리막국수

■ 여주 천서리막국수

매콤달콤 양념장, 보기만 해도 '막' 끌려


여주 천서리의 막국수촌은 1987년 평안북도 강계 출신의 실향민이 터를 잡고 막국수 집을 열면서 형성됐다. 가게마다 양념장 비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달콤하면서도 칼칼한 매운맛이 천서리 막국수만의 특징이다.

테이블에 앉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면 육수가 담긴 주전자를 가져다주는데, 약간의 후추를 치고 뜨거운 육수를 호호 불어 마시면 진한 국물의 맛이 입맛을 돌게 한다. 천서리 비빔 막국수는 국수 밑에 양념장이 숨겨져 있다. 매콤한 양념의 맛은 상큼하고 시원한 백김치가 중화해 계절 가릴 것 없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맛집을 찾아서]이천 '청목 한정식'

■ 이천 쌀밥

임금님께 올리던… '내가 조선의 쌀이다'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던 이천 쌀은 윤기 있고 밥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갓 지은 찰진 밥 한 그릇만 있어도 마음이 든든하고 별다른 반찬 없이 술술 넘어간다.

이천 쌀밥은 고슬고슬하게 잘 지은 밥이 일품이지만, 거기에 푸짐한 반찬까지 맛볼 수 있어 한식의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주 소머리국밥

■ 광주 소머리국밥

소머리 달여먹고 벌떡… '국밥달인' 인정


1970년대 들어 새로 등장한 향토음식이다. 광주 소머리국밥은 역사가 짧아 다른 지역의 국밥처럼 시장과 같은 개연성은 찾기 어렵다.

1970년대 중반 곤지암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한 부부가 있었는데, 병치레가 잦은 남편을 위하던 부인이 '소머리를 달여 먹이면 오장육부의 기능이 활발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에게 끓여 먹인 것이 발전해 소머리국밥이 됐다고 전해진다. 부인은 남편의 건강을 찾아주기 위한 보양식으로 만든 소머리국밥을 포장마차의 메뉴로 손님에게 내놓았는데 반응이 좋아 지금의 소머리국밥 식당으로 발전했다.

1980년대 초부터 광주시 곤지암읍에 소머리국밥 식당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현재 곤지암읍 곤지암리 일대에는 소머리국밥 골목이 형성될 정도로 소머리국밥 식당이 성업 중이다.

수원 왕갈비탕

■ 수원 왕갈비(탕)

'왕' 크니까 '왕' 맛있다… 갈비의 '왕'


1940년대 수원에는 전국 3대 우시장 중 하나가 있었다. 수원 우시장은 연간 소 거래량이 2만마리가 넘을 정도로 성행했던 만큼 근처에는 자연스레 소 갈빗집이 생겨났다.

수원 왕갈비의 시초는 해방 후, 지금의 영동시장 싸전 거리에 문을 연 해장국집 '화춘옥'이다. 해장국에 넣어주던 소갈비를 소금으로 양념해 숯불에 굽자 신문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수원 곳곳에 '수원 왕갈비'라는 이름의 식당이 우후죽순 문을 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원시는 1985년 수원갈비를 고유 향토음식으로 지정했다.

대부도 바지락칼국수

■ 대부도 바지락 칼국수

'대부'도 '칼'국수… 어쩐지 쫄깃하더라


대부도 앞바다에서 바로 공수해 온 해산물로 만드는 바지락 칼국수는 맛도 맛이지만, 철분과 비타민B가 풍부해 건강에도 이롭다.

부드러운 면발과 신선한 바지락으로 큰 그릇에 가득 담겨 나오는데, 당근과 호박, 바지락의 시원함이 어우러져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 맛이 손님들을 사로잡는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바지락의 식감과 부드럽고 쫄깃한 칼국수 면발이 입안을 즐겁게 만든다. 광활한 바다를 보며 먹는 바지락 칼국수는 눈과 입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짜장면

■ 인천차이나타운 짜장면

"와따 이 짜장 재밌네~" 웃기는 짜장


짜장면은 장을 볶아 면과 함께 먹는다는 뜻이다. 짜장면의 뿌리는 인천의 화교들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제물포(인천)에 주둔한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군역상인 40여 명이 우리나라 최초의 화교들이다.

인천에는 산둥성 출신 중국인 노동자(쿨리)들이 진출했는데, 이들이 부두에서 일하면서 간편하게 먹을 음식이 필요했다. 중국에서 인천으로 온 화교들이 중국식 짜장면을 만들어 팔았고, 이후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을 거듭해 오늘날의 짜장면이 됐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짜장면을 처음 판 곳은 1905년 인천차이나타운에 문을 연 중화요릿집 '공화춘'으로 알려졌다. 지금도 인천차이나타운 곳곳에 중화요릿집이 성업하고 있다.

신포시장 닭강정

■ 신포시장 닭강정

신포시장엔 맛있는 거 옆에 맛있는 거


인천차이나타운에서 개항장 거리를 따라서 걸으면 신포국제시장을 만날 수 있다. 신포시장 명물 '신포닭강정'은 커다란 솥에 특제소스를 버무려 튀겨 낸다. 부드러운 육질에 매콤달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다른 지역 닭강정과는 확실히 다른 맛을 낸다.

신포닭강정은 시장에서 곧바로 뜨겁게 먹어도, 집에 가져가서 식혀 먹어도 모두 매력적이다. 쫄면과 만두로 전국적 프랜차이즈로 확대된 신포우리만두 본점, 1978년 문을 연 신포순대, 공갈빵 등 신포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 넘친다. 신포시장에서 닭강정을 먹으려면 어느 집이든 긴 줄을 서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가정의 달 '강화 고려인삼'으로 효도하세요

■ 강화 고려인삼

거란이 고려한테 꼼짝 못한 이유가 혹시?


강화 인삼은 고려 고종(1232년) 때부터 재배를 시작한 고려인삼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고려인삼은 원래 개성을 중심으로 재배됐다. 한국전쟁 이후 개성에서 인삼을 재배하던 농민들이 가까운 강화도로 피란을 오면서 1953년께부터 강화 고려인삼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강화 고려인삼은 사포닌 성분이 많아 타 지역 인삼보다 효과·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강화군이 6년근 인삼의 주요 생산지로 자리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강화인삼농업협동조합, 강화고려인삼영농조합법인, 강화초지인삼영농조합법인 등에서 구매할 수 있다.

/김성주·박경호기자 ksj@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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