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치하 압박과 설움… 희생정신 이어갔으면"
조부 야학 등 힘쓰며 신사참배 거부
사후 20년 만에 건국훈장 대통령장
"3·1절 태극기 잘 안보여 안타까워"
3·1절을 앞두고 이필주(1869~1942) 애국지사의 친손녀인 이현경(71·인천 서구)씨는 "선조들의 독립정신을 후대가 잘 이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필주 애국지사는 20살 때 대한제국 군대에 들어가 8년간 장교로 근무했다. 그러다 1907년 일본이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자 상동청년회에 가입해 기독교인이 됐다. 이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된 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그는 2년간의 투옥생활을 마치고 목회활동을 하며 유치원·소학교·부녀자를 위한 야학 등을 개설해 육영사업에도 힘썼다.
이후 서울을 떠나 수원 남양교회에서 교역에 종사하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항거하다가 1942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년 뒤인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이씨 역시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올바른 길을 살고 싶었다. 나라를 위해 큰일은 하지 못하더라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도우려 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가사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한다"며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시며 나라를 위해 싸우셨고, 우리 역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처럼 큰일은 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나라에 가는 선교사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등 작은 보탬이라도 되려고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오랫동안 할아버지의 사진을 한 장도 갖지 못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친오빠에게 할아버지의 사진과 유품을 물려줬는데, 오빠가 호주로 이민을 가면서 이씨에게 남겨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인천보훈지청은 2022년 이씨에게 이필주 지사의 사진을 증정했다. 이씨는 "뜻밖의 선물이어서 참 감사했다"며 "앞으로도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지원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끝으로 이씨는 "일제 치하에 있는 동안 우리 선조들은 많은 압박과 설움 속에서 살았을 것"이라며 "요즘에는 많은 분이 이런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3·1절에도 태극기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후대가 선조의 희생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잘 이어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