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 름 석자 대로 르도록"


1440°기술선보이며 존재감 각인
올해 동계체전서 하프파이프 金
이채운형 영상 보며 마음 다잡아

이지오1
스노보드를 타고 공중에서 회전을 하는 이지오(15·양평중)의 모습. /이지오 선수 제공

눈 덮인 언덕 위에 선 스노보더는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긴장한 기세가 역력했다. '1천440°'. 떨림을 뒤로하고, 호기롭게 도전한 고난도 기술은 완벽했다. 공중에서 네 바퀴 반 이상을 돌았다. 그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기술이다.

이지오(15·양평중·사진)는 이때 맛본 긴장감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지난 11일 최종 랭킹 4위에 오르며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던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스노보더가 캐나다로 모여든 대회였다.

"출발대에 섰을 때 최대한 심박수를 가라앉히려고 심호흡을 많이 해요. 아무래도 부상 위험이 큰 종목이잖아요. 대기실에서는 코치님이 훈련 때 제 모습을 찍어주신 영상을 계속 돌려봐요. 긴장을 어떻게든 떨쳐내는 거죠."

이지오는 한국 스노보드계의 샛별이다. 현재 이채운(수리고)과 함께 청소년 스노보더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지난 23일 열렸던 전국동계체육대회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하프파이프 남중부에서도 97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노보드 종주국은 물론 여러 국가의 설원에서 무수히 시합을 펼쳐봤지만, 올해 동계체전에서 얻은 금메달은 유독 값지다. 그는 "다른 나라 시합에도 출전해봤지만, 우리나라에서 열린 큰 대회인 동계체전에서 금메달을 얻어서 왠지 뜻깊은 거 같아서 기쁨이 더 크다"고 웃어보였다.

그가 함박웃음을 짓는 건 동생 덕분이기도 하다. 이지오와 이수오(양평초), '형제 스노보더'는 올해 동계체전에서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수오는 남초부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서 96.33점을 기록해 정상에 올랐다.

형제가 함께 스노보드를 타게 된 데는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이지오는 "거의 3~4살에 스노보드를 탄 거 같고, 시합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섰다"며 "아버지가 스노보드를 타셨는데, 아버지 영향으로 자연스레 흥미를 느끼고 (동생과 같이) 선수 생활을 하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지오

최근 한국 스노보더들이 하나둘 국제무대에서 기량을 뽐내면서 팬층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이 거둔 성과에 비해 훈련 여건은 초라하다. 눈이 내리지 않는 여름에는 에어매트를 설치한 언덕과 점프대에서 보드를 타야 하나, 국내에는 이렇다 할 훈련장이 없다. 사실상 한국 스노보더들의 활약은 열악한 여건을 극복하고서 힘들게 얻은 성과인 셈이다.

이지오 역시 대규모의 매트점프(에어매트가 깔린 언덕) 시설을 갖춘 일본 사이타마까지 원정 훈련을 떠나곤 한다. 그는 "국내에서는 스키장 시즌이 한두 달밖에 되지 않기도 하고 연습장소도 많지 않다. 그래서 보드 탈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동계시즌 국내와 해외를 종횡무진했던 이지오는 현재 꿀맛 같은 휴식기를 보내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평소 동경하던 선수의 경기 영상을 찾아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있다는 그는 설원 위를 날아다닐 다음 겨울을 기다린다.

"제 롤모델은 채운이 형(이채운 선수)이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 나가서 같이 붙어 지낼 만큼 친하고, 배울 점도 많아요. 훗날 밀라노 동계 올림픽, 동계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고 싶은 건 물론이죠. 지금처럼 계속 시합에 나서면서 '프리스타일 스노보드 하면 이지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보드를 타고 싶어요."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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