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 번식을 통해 태어난 판다 ‘푸바오’.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푸바오는 3일까지만 외부에 공개된다. 2024.1.13/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240분의 기다림, 5분의 만남 ‘안녕, 푸바오’

영하 5도의 추운 날이었다. 그럼에도 이른 아침 에버랜드로 향했다. 봄이 오면 푸바오가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에버랜드의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 1시간 가까이가 남았지만 에버랜드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길게 늘어선 줄은 캐리비안베이까지 이어졌다. 설마 이 많은 사람이 전부 판다를 보러왔을까. 마침 에버랜드가 새끼 쌍둥이 판다를 외부에 공개한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때였다.

에버랜드 문이 열리자마자 줄 앞쪽에 서있던 이들이 일제히 뛰는 것 같았다(아마도). 그 많은 이들이 어디로 뛰는지도 왜인지 알 것 같았다. 마음만은 함께 달리고 싶었지만 줄 끝에 서있었던 터라 그저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입장한 후 지도를 더듬어 판다월드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잰걸음으로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표소 앞에 서있던 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기나긴 줄, 직선을 넘어 곡선을 그리고 있는 매우 매우 매우 긴 줄을 마주했다. 족히 몇 ㎞는 될 것 같았다. 줄의 시작점은 판다월드였는데, 언덕을 넘어 이중으로 형성된 줄이 다시 판다월드 부근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에버랜드 직원은 ‘예상 대기시간 240분’이라고 적힌 팻말을 든 채였다. 작은 접이식 의자며 핫팩, 간식으로 무장한 관람객들은 묵묵히 견딜 뿐이었다.

판다월드 대기줄
용인 에버랜드 판다월드 대기줄. 영하 5도의 날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판다월드 입장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줄은 오르막을 타고 언덕까지 이어졌다가 내리막길로 판다월드까지 닿았다. 예상 대기 시간은 240분이었다. 2024.1.13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맛집에 가기 위해 줄을 서느니 옆집에 가버리고 마는 평소 성향상 240분의 기다림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심지어 제법 추웠다. 찬 바람이 온 몸을 엄습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봐야하는 걸까. 망설임도 잠시, 한 번 줄을 서니 이탈하는 일에도 망설임이 생겼다. 3시간 가까운 대기 끝에 판다월드 입구에 닿았지만, 내부에서도 대기가 있었다. 또 다시 수십 분의 기다림.

판다 관람 시간은 실내 방사장에서 5분, 실외 방사장에서 5분으로 각각 제한된다. 왼쪽에선 거대한 판다가 누운 채 잠들어있었다. 푸바오의 아빠 러바오였다. “어, 저기 푸바오 있어.” 누군가의 말에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러바오보다는 확연히 작은 판다가 대나무를 먹고 있었다. 방사장 앞에 모인 많은 이들이 하나 같이 숨 죽인 채, 그러면서도 저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카메라를 들고 움직임 하나하나를 찍기에 바빴다. ‘행복을 주는 보물’ 푸바오였다.

100㎏가 넘는 거구라지만 아기 판다는 아기 판다였다. 생각보다 작고, 귀엽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앙증맞았다. 200여분의 기다림 끝에 마주한 5분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총 10분의 관람 시간이 끝나고, 다수의 관람객은 재차 푸바오를 보기 위해 다시금 기꺼이 줄을 서는 모양새였다. 기다림에 지쳤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지고 포근함이 가득해졌다.

러바오
실내 방사장 한 쪽에서 자고 있던 러바오. 푸바오의 아빠다. 2024.1.13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코로나19 우울했던 나날…‘행복’ 돼준 아기판다

푸바오
대나무를 먹는 푸바오 모습. 100kg가 넘는다지만 아빠 러바오보다는 확연히 작다. 아기 판다는 아기 판다다. 2024.1.13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다음 달 중국으로 반환되는 푸바오가 3일까지만 외부에 공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지막 휴일 많은 인파가 에버랜드로 몰려드는 추세다. 연휴 시작일인 1일 SNS 등엔 “1등으로 입장한 분은 오전 5시 30분부터 기다렸다더라” “이제까지 3시간 넘게 기다렸던 적이 없는데 마지막이라 그런지 정말 어마어마하다” “기껏 기다려서 봤는데 두 번 다 푸바오 자고 있었다”는 등의 후기가 속출했다. 이날도 최저 기온이 영하 5도로 뚝 떨어진 추운 날이었지만, 푸바오를 만나기까지 400여분은 족히 기다려야 했을 정도로 많은 관람객이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푸바오는 2020년 7월 20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연 번식을 통해 태어난 자이언트 판다다. 우리나라 동물 사육 역사의 한 획을 그은 특별한 존재는 단연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푸바오 열풍은 단순히 존재 자체의 특별함이나 희귀함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나날이 불안하고 우울했던 국민들에게 푸바오의 귀여운 외모와 몸짓은 소소한 행복과 위안을 주기엔 충분했다.

196g의 핑크빛 작은 생명체가 서서히 검정 하양 판다의 외형을 갖추고, 대나무를 먹기 시작하고, 엄마 아이바오에게 혼나고, 강철원 사육사에게 놀아달라고 보채며 100㎏가 넘는 자이언트 판다로 성장해가는 모습들이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며 지켜보는 이들에게 설렘과 뿌듯함을 안겨줬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애정을 담아 푸바오를 다루는 엄마 아이바오의 모습, 동물과 사람과의 관계를 뛰어넘은 사육사들과의 교감 역시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푸바오 관련 유튜브 영상에선 ‘푸바오를 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을 잊게 된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우울했는데 푸바오 덕분에 많이 힐링하고 행복했다’는 등의 댓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사회는 점점 따뜻함을 잃고, 갑자기 불어닥친 코로나19 대유행이 단절을 더욱 심화시켰던 지난 4년. 온기를 불어넣어준 아기 판다 푸바오는 이름처럼 ‘행복을 주는 보물’이었다. 우리의 영원한 아기 판다, 푸바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