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남 전 주가봉 대사
고 박정남 전 주가봉 대사는 풍부한 유머로 대화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인물이었다. 고인은 지난해 6월 모교인 대건고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린 결론은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였다”고 말했다. 2023.06.28 / 경인일보DB

인천 출신 외교관으로 한국 첫 국제표준 여권 제작·발급 업무를 주도하고, 세계여행가 김찬삼 교수와 그를 여행가의 길로 이끈 슈바이처 박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 박정남 전 주가봉 대사가 지난 6일 오전 7시 병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4세.

고인은 1959년 11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출생이다. 직업군인이던 부친이 베트남에 파병되면서 1968년 외가가 있는 인천 송현동 수도국산에 정착했다. 인천서흥초, 인천대건고,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부터 외교관을 꿈꿨다. 대학 재학 중 외무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최종합격(1991년)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5공 군사정권 시기 “나의 미래와 목숨을 걸고 군부와 싸울 용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 개인의 출세만을 위해 고시 준비를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고시를 포기했다. 사병으로 군 복무 중 ‘6·29선언’으로 대통령 선거 직선제가 도입됐다.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서른이 넘어 자신의 오랜 꿈을 이뤘다.

고인은 외교부 법규과장 재직 시절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표준에 맞는 ‘국제 표준 여권’ 발급 시스템을 구축했다. 주이스라엘대사관 공사참사관 겸 주팔레스타인 대표(2008년), 주이집트대사관 참사관(2011년), 주러시아 이르쿠츠크 총영사(2014년)를 거쳐 2016년 주가봉대사로 부임했다. 주가봉 대사 시절에는 자신의 고교 동창인 김재민 송도고 교사의 제안을 받아 인천 출신 세계여행가 김찬삼(1926~2003) 교수와 슈바이처 박사가 1963년 가봉에서 찍은 사진을 ‘가봉 슈바이처 박물관’에 전시하는 일에 힘을 보태 성사시켰다. 2019년 12월 28년의 공직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했다. 고인은 외교관으로 스리랑카, 미국, 폴란드, 이스라엘, 이집트, 러시아, 가봉 등 7개국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인은 공직생활 중 ‘이해충돌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주식투자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고인의 인천대건고 동창인 백의흠(64) 미국 필라델피아 엘림교회 목사는 “박 대사는 끈기의 사람이었고, 두뇌가 명철했고, 강직하면서도 청렴결백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가미한 재치있는 글로 모두를 놀라게 했던 친구였다”면서 “갑작스러운 비보에 안타깝고 눈물이 난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정주연씨, 아들 박성호·박준호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