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처우개선 자긍심… 의원 내려놓고 정치불신 불 끌것"
우레탄폼 등 가연성 심재 사용금지한 '건축법 개정' 입법활동 큰 의미
개정법 소급안돼 평택 냉동창고 대형화재때 소방관 3명 순직 '무력감'
뒤에서 목소리만 내는게 부끄러워 돌아가… 의정부시민으로 남을것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출동하는 119 구조대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무이한 목표다."
권력의 맛을 보면 내려놓기가 어렵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안타까워해도 그 자리를 대신하긴 어렵다. '세상의 이치'를 기준으로 보면 오영환 국회의원이 겨우 초선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진심을 믿기 어렵다. 또 그 잣대로 보면 다시 시험쳐서 구조대원으로 돌아가겠다는 진의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오 의원은 불출마 선언을 한 지난해 4월10일 이후 지속적으로 '왜'를 질문받고 있다.
■ "내려놓음으로써 정치 신뢰 회복에 밀알이 될 것"
더불어민주당은 오영환 의원에게 복잡미묘한 감정으로 남은 것 같다. 전략공천으로 정치 기회를 부여한 감사한 정당이면서도 민주당 초선의원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그는 정치에 한계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오 의원은 '정치에 염증을 느꼈냐'는 질문에 "염증은 안 맞는 표현"이라면서도 "갈등과 혐오의 정치현실을 바꾸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성찰, 제 역량의 부족을 느꼈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4년 전 한 언론사와 한 '영입인재' 인터뷰에서 "정책을 보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권력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것에 몰두하는 정치"를 '정치를 위한 정치'라고 비판하고 개선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리고 4년 뒤 그는 "지금의 정치는 극단적 대결, 승자독식, 모욕과 비난 일변도 공격이 최우선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내가 몸담은 정당 진영의 목소리만을 앞세워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는 오늘날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잃는 근본원인"이라고 질타했다. 또 "대화 설득 협의 정신의 사회적 대타협 정치가 복원돼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힘"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오 의원은 "그런 역할을 제가 속한 당이 먼저 해주길 바랐지만…"이라고도 덧붙였다. 4년 전 청년 정치인의 푸른 꿈은 양당 대결구도에서 꺾인 셈이다.
하지만 오 의원이 국회를 떠나는 이유가 '실망' 때문은 아니다. 그는 불출마로 마지막 희망을 심었다.
오 의원은 열악한 소방관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 활동에 자긍심을 느낀다고 설명하다가 "온전히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오만한 생각을 국민이 가장 싫어하신다"면서 "저는 애초에 최선을 다하고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는 결단이, 그 모습이 국민께 어쩌면 정치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울림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권력기관에서 평범한 직업인으로 돌아가는 행보가 '다른 정치의 사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 4년간 순직 소방관 10인…"뒤에서 법안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부끄럽다"
정치문화 개선의 꿈은 꺾였지만 소방정책의 푸른 꿈은 하나 둘 성과를 냈다. 그것은 '입법의 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오 의원은 "순직소방관을 추모하는 문화를 만든 것이나, 공상추정법을 개정해 국가가 업무와 질병 연관성을 증명하도록 한 것이나, 화재예방법 화재조사법을 제정한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그중 기쁨(喜)과 슬픔(哀)을 안긴 '건축법 개정'은 특별하다. 이천 냉동물류창고 화재에서 4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 된 우레탄폼 등 가연성 심재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오 의원은 "가연성 건축자재의 문제는 20년 동안 반복해 지적됐음에도 건축계의 경제성 논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 정치 역시 건축업계 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개정이 안 됐다. 그런데 21대에서는 그것을 해결했다. 감사했다"고 표현했다.
그렇지만 이 법은 그를 불출마와 현장 복귀로 이끈 법이기도 했다. 법이 의결된 뒤 2022년 1월 6일 평택신축냉동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나 이영석·박수동·조우찬 소방관이 순직했다. 오 의원은 "입법 노력이 성과로 나타났음에도 개정법이 소급적용되지 않아 순직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아무리 입법을 해도 동료들의 순직을 막을 수 없다는 무력감과 죄책감이 시작된 것이.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오 의원은 "4년 동안 여당일 때든 야당일 때든 결과를 도출하려 애를 썼지만, 그동안 선후배 소방관 10명을 현충원에 묻으면서, '나는 역할을 했다'고 느끼는 것조차 자괴감이 들었다. '더 큰 변화, 정의를 위해 이 자리에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다"며 "사지로 가는 동료의 뒤에서 서서 목소리만 내는 것이 부끄럽다. 끝내 저는 소방관의 사명, 그것이 저의 시작이자 끝이고 전부다"라고 담담히 털어냈다.
그는 그것을 '소방관 DNA'라고 표현했다. "저는 구조대원으로 10년을 근무했다. 생사가 오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손을 잡아 생명을 구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순간에서 평생 자유로워질 수 없다. 현장에서 생명을 지켜낸 사람은 그 이상의 귀한 가치를 못 찾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소방관의 정치 진입에 대해서는 "꼭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오 의원은 "소방관의 인력문제가 해소되지 못했다. 국가직 전환이 이뤄졌지만, 소방청-지방소방청으로 이어지는 지휘권 일원화, 조직 일원화, 국가 책임 일원화가 완성돼야 전국 국민이 평등하게 안전을 담보 받을 수 있다. 안정적 전문적 지휘권한 정책 속에서 소방관도 안전활동을 추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아직 과제가 산적하니 '나의 바통을 누군가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 의원은 "반드시 소방관 국회의원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새로운미래 영입인재로 들어간 문재인 정부 조종묵 초대 소방청장이 계시다. 새로운미래 비례대표 1번을 받으셨다. 상징성·전문성을 간직한 분이기에 그런 역할을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지지 의사도 내비쳤다.
■ 의정부…목 메 말·잇·못 "제 딸의 고향에서 이웃을 지키는 것으로 보답할 것"
오영환 의원의 선의와는 달리, 일년전부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지역 민심은 떨떠름했다. 잘했다는 박수보다는 우리 지역을 왜 버렸냐는 질타가 더 거셌다. 다음 선거에 불출마 선언이 곧 의정활동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민의 섭섭함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오 의원은 의정부에 대해 묻자 말을 잇지 못했다.
오 의원은 "의정부 시민 생각하면…가슴이 찢어진다"면서 "계속 의정부 시민으로 있겠다. 지역구를 너머 딸의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 됐다. 유권자가 당신을 대표할 누군가를 골라 이름 옆에 도장을 찍는 경험이 사실 특별하고 감사하고 평생 뼈에 새길 일이어서 욕을 먹더라도 여기에 살며 삶의 순간들을 나누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임기는 오는 5월29일까지다. 지역사무실 보증금으로 월세를 낼 정도로 불출마의 타격이 컸지만, "마지막까지 정치인의 사명을 다하겠다"고도 했다.
소방관 시험 준비가 잘 돼가냐는 질문에 "시험은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의무와 책임에 집중한 뒤에 하겠다. 의원직에 있는 동안 다음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있냐 묻자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다. 단 한 번에 합격해야 한다. 생계를 책임진 데다 대출도 있고, 아이가 있는 가장이다.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오 의원을 통해 평범한 삶으로 환류하는 정치가 되새겨지길 바라본다.
글/권순정기자 sj@kyeongi@kyeongin.com, 사진/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오영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2022년 3월~2023년 4월)
▲더불어민주당 재해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2020년 9~10월)
▲제21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2020년 6월~)
▲중앙119구조본부 수도권119특수구조대 항공대원(2017년 7월~2019년 12월)
▲서울시119특수구조단 산악구조대원(2012년 11월~2015년 1월)
▲광진소방서 119구조대원(2010년 10월~2012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