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재해석

 

자극적인 이야기로 내재된 감정 분출
'붉은 천' 펄럭이며 무대 위 미장센 매료
학생 네명, 객석 누비며 에너지 쏟아
이해랑예술극장서 내달 28일까지

알앤제이
연극 '알앤제이' 공연 장면. /(주)쇼노트 제공

"지금은 우리의 세상이다."

모두가 잠든 밤, 숨이 막힐 정도로 억압적인 분위기와 엄격한 규율 속에 발맞춰 걷던 학생들이 잠에서 깨어 어디론가 향한다. 작은 손전등을 들고 찾은 그곳에는 붉은 천과 한 권의 책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책은 네 명의 학생들을 숨 쉬게 해줄 작은 숨구멍이 된다.

올해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연극 '알앤제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이자, 무대 위에 펼쳐지는 또 하나의 극이다. 두 사람의 애틋하면서도 비극적인 사랑과 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네 명의 학생들이 현실과 역할극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가 극이 진행되는 내내 몰아친다.

학생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한 희곡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버린 남녀의 사랑, 캐풀렛과 몬테규 집안의 대립,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과 이를 걱정하고 돕는 인물들까지. 극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 군상과 네 학생들이 겪어보지 못한 새롭고 자극적인 세상에 대한 욕망들이 만나고 분출되는 창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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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알앤제이' 공연 장면. /(주)쇼노트 제공

호기심으로 시작해 어느새 역할극에 진심이 되어가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 과정들이 극 사이사이에 차곡히 쌓였다. 때로는 다음 대사가 적힌 페이지를 찢어버리거나, 들려오는 수업 종소리에 또다시 의자에 앉아 학교에서 주입한 내용들을 중얼거리는 등 극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따금 그들 안에 내재돼 있던 폭력적인 모습들도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책으로 또 마음으로 전하는 진심들이 손을 잡고 이들을 다시 극 속으로 이끈다.

작품은 무대를 영리하게 쓴다. 가운데 주 무대를 두고 배우들이 객석 사이를 누비는데, 때로는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함께 흥미롭게 지켜보기도 한다. 무대 쪽으로 설치된 좌석 아래를 지나가기도 하고, 여러 곳으로 나뉘어진 퇴장로로 흩어졌다 모이기도 한다.

이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동시에 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싣는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와 울림, 무대를 향해 외치는 목소리가 더욱 또렷한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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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알앤제이' 공연 장면. /(주)쇼노트 제공

미장센의 아름다움은 극의 매력을 높였다. 작품에서 또 다른 배우로 불리는 '붉은 천'은 학생들이 연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소품이다. 나무 책상과 의자, 바닥으로 둘러싸인 무대에 떨어지는 조명, 그곳에서 유유히 존재감을 뽐내는 붉은 천은 드레스로, 칼로, 약병으로 모습을 바꾸고 죽음의 장면을 그리거나 등장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 뻗어 나가기도 한다.

특히 천둥이 칠 때 천을 휘두르는 모습, 맵여왕의 이야기에 무대를 가르며 펄럭이는 천의 모습은 무대를 한층 더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더불어 이를 무대에서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동작들도 인상적이다.

이 극이 비극의 결말일지, 희망의 결말일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이 대사는 확실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가 친구라면, 손을 잡아."

연극 '알앤제이'는 4월 28일까지 동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이해랑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