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복의 'DMZ'
국토의 속살 '들풀·들꽃' 작품으로
평온함 담겨 한편의 시같은 '목판화'
역사 증명하는 1980년대 대표 장르
경기도에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살고 있다. 경기도는 그들이 살아간 터전이자, 작품이 탄생한 작업실이기도 하며, 영감을 주는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이 바라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작품에 담겨 흔적으로 남고, 우리는 그 흔적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본다.
경인일보와 경기도미술관은 미술관의 소장품과 경기도 작가들을 중심으로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줄 기획을 마련했다. 경기도와 미술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 편집자 주
목판화의 미학은 칼맛에 있다. 칼은 '살림'과 '죽임'의 두 면을 하나로 가진 도구다. 목판화는 죽은 나무로 '살림'을 얻는, 그러니까 죽은 것과 산 것의 의미로 합집합을 이루려는 아름다운 수행이다. 그것은 목판이 가지는 여러 의미들 가운데 하나이겠지만, 오랜 역사를 살피면 그 사실은 명확해진다.
어두운 근대를 거쳐 '온숨(義氣)'으로 돌아온 이 칼의 맛은, 우리가 근대를 넘어 현대사의 질곡을 헤엄칠 때 역사를 증거하고 어울림의 연대를 만들었던 회화의 한 분수령이 되었다. 1980년대 민중 목판화의 시대는 새로운 회화적 사건이었다. 그 삶의 숨결은 지금, 이곳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목여(木如)는 류연복의 호(號)다. 그 말뜻은 '나무와 같다', '나는 나무다', '나무를 따른다'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가 목판화를 하면서 '나무'에 대해 갖는 사유의 면목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그의 호를 그렇게 지은 데에는 자신이 곧 '나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크게 세 개의 지류를 형성하며 흐른다. 본류는 의심할 바 없이 이 땅, 즉 모국어(母國語)로서의 국토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국토를 형상화하기보다는 모국어의 속살이랄 수 있는 이름 없는 들풀과 들꽃들의 대지를 새긴다. 더불어 그 대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와 흐르는 강과 우뚝 속은 산과 섬을 새긴다.
2010년에 목판으로 새긴 'DMZ'는 푸르른 들의 평온한 세계를 보여준다. 그곳은 사람 하나 없이 오롯이 풀이요, 꽃이다. 풀꽃은 그래서 한 편의 시다. 나무에 새긴 들풀과 DMZ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발자국으로 새긴 글씨가 한 쌍을 이룬다.
그 무렵 그는 1년에 한 번씩은 동료 작가들과 늘 비무장지대를 두 발로 누볐다. 비무장지대 바깥은 첨예한 무장지대가 아닌가. 그러니 한반도에서 이곳만이 평화의 공간일지 모른다. 그가 동물들의 발자국으로 DMZ를 새긴 것처럼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고 한반도를 평화의 땅으로 만들어야 하리라.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