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 프롬 인천·(23)] 용현동 유튜버 '궁돌이 홍쌤' 홍현도입니다


용마루서 어린시절… "언덕 집 많았다"
경복궁 모습에 매료… '다음 카페' 활동
매달 모임… 성인 회원들앞에서 해설도
문화재학과 졸업후 건축 전공 석·박사
인천시립박물관서 영단주택·사택 조사
"다른 지역과 차별성 있는 중요 건축물"

서울역사박물관 옮겨 '정동 모형' 고증
옛날 사람들 생활 알고싶어 한복 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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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도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홍현도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유튜브 채널 '궁돌이 홍쌤'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흔치 않은 건축 전공 학예사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경인전철을 타고 서울 종로구 일대 고궁을 답사하러 다니던 소년 홍현도는 궁궐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따낸 어엿한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의 관심사는 한국 전통 건축의 정점인 궁궐에서 서민·노동자가 살던 인천의 근대 건축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면에서 '나는 인천 출신입니다'라는 주제의 기획 시리즈 스물세 번째 초대 손님으로 '용현동 궁돌이' 홍현도 학예사는 안성맞춤이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달 26일 오후 인천 중구 대한성공회 인천내동교회 인근 송학동3가 4번지에 있는 1950년대 근대 건축물이면서, 지난해 인천 엽서 문방구로 새롭게 문을 연 '디어프롬'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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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현동 영단주택.

홍현도 학예사는 1984년 인천 옛 남구, 지금의 미추홀구 옛시민회관사거리 인근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옹진군 자월면 자월도 출신이고, 어머니는 서울 출생으로 고등학생 무렵 인천 동구 만석동으로 터전을 옮겼다고 한다.

홍 학예사가 3살 때 고인이 된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할머니는 연안부두에서 꽃게 도매업을 하고, 용현동 용일시장에서 꽃게를 직접 팔면서 살림을 꾸렸다. 홍현도 학예사 아버지는 아들이 3살 때 대우중공업 경남 창원 사업장에 직장을 얻었다. 가족 모두 창원에 살다가 홍 학예사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인천으로 돌아왔다.

"창원에 살던 시절 아버지는 인천이 참 좋은 동네였다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아버지는 다시 인천으로, 용현동으로 돌아와 대우자동차 세일즈를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용일초등학교 인근에 살다 용현4동, 그리고 용현2동 용마루라 불린 동네에서 중학교 때부터 쭉 살았습니다."

홍현도 학예사 가족의 터전 용현동은 원래 바다를 맞댄 마을이었다. 용현동·학익동 일대 바닷가는 일제강점기 매립돼 염전과 거대한 공장지대로 변했다. 공장 주변으론 임직원 사택과 관영주택 단지가 조성됐다.

한국전쟁 시기 조성된 용현동 미군 유류보급소(POL)는 대한석유공사 저유소, SK저유소, SK물류센터였다가 2016년 대단지 아파트가 건설됐다. 대한전선 부지는 대우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공장이었다가 도시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용현2동과 용현5동 일대 염전지대는 1970년대 후반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 토지금고가 매입해 처음으로 택지개발사업을 벌였다. 토지금고에서 주택·상업용지를 조성해 지금도 이 일대는 '토지금고'라는 지명이 더 익숙하다.

"용마루는 일제강점기 때 매립하기 전 해안 경계선이었기 때문에 높은 언덕에 집들이 많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발소. 그러니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한 쪽에 쪽구들이 있어 그 위에 이불이 있고, 만화책도 놓여 있고, 연탄 난로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은 1970년대에 있었을 법한 구식 이발소도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2000년대 초반)까지 이런 이발소에서 스포츠 머리를 깎았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믿질 않아요."

홍현도 학예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동인천역으로 가 경인전철을 타고 서울 경복궁과 주변 고궁을 오갔다. 경복궁에서 열린 중국 국보 전시 소식을 신문에서 접하고 무작정 갔는데, 아름다운 경복궁의 모습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가 궁궐을 파고든 건 이때부터다.

인하대사범대학부속중학교 시절 학교 도서관에 한국 전통 문화와 관련된 책이 많아 점심시간만 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게 일과였다. 그러나 궁궐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소년은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인천의 대표적 특성화고교인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중학교 2학년 때 'IMF 사태'(1997년 외환 위기)가 터지고 집안 사정이 나빠졌어요. 당시 성적이 아주 우수하지 않은 학생 중에선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수 있음에도 일찍 취업하겠다는 생각에 특성화고를 선택한 친구가 꽤 있었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였어요."

인천기계공고 전자기계과 학생이 됐지만, 궁궐 답사는 포기할 수 없었다. '인터넷 시대'가 본격화한 2000년대 초반부터 '프리챌' '다음 카페' '세이클럽' 같은 지금은 추억이 된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운영됐다. 홍현도 학예사는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다음 카페 '궁궐산책'이란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했다.

매달 한 번씩은 주말에 경복궁 등지에서 '정모'(정기 모임)를 했다. 성인 회원들 앞에서 해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궁궐 공부가 깊어졌다. 고궁을 좋아하는 공고생, 요즘이었다면 '덕후'라 불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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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시절 경복궁에서 홍현도 학예사가 다음 카페 '궁궐 산책' 회원들에게 경복궁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다. /홍현도 제공

집안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홍현도 학예사는 다시 대학 진학을 꿈꿀 수 있었다. 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관련 분야를 공부했다. 천년 고도 경주에서 대학 생활을 하니 답사는 일상이었다. 다시 고향 인천으로 돌아온 건 대학 3학년 2학기 무렵 인천시립박물관 기간제 연구원으로 뽑히면서다.

"1년 반 정도 학교를 더 다녀야 했는데, 다행히 주 4일 근무라서 꼬박 하루는 경주에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처음에는 전시 보조 업무를 했어요. 중간에 궁궐을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경기대학교 건축설계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시립박물관 유물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인천의 근대 건축물 조사를 보조하게 됐고, 그때 인천 개항장 밖의 근대 건축물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실력을 갈고닦은 홍현도 학예사는 2014년 인천시립박물관의 근현대 주거문화 학술 조사를 맡아 조사보고 제26집 '관영주택과 사택'을 냈다. 인천부(지금의 인천시청)는 중구 도원동과 미추홀구 용현동 등지에 집을 직접 지어 분양했는데, 이를 '부영주택'이라 한다. 시영아파트와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쉽다.

조선총독부는 전국의 주택 공급을 위해 오늘날 LH 격인 조선주택영단을 설립해 1943년 인천 곳곳에 영단주택을 건설했다. 부평역 등지엔 관사를 건설했다. 홍현도 학예사가 조사를 통해 확인한 인천 지역 관영주택과 사택은 27곳으로 총 612동이 건설됐다. 조사 당시만 해도 상당수 건축물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인천 근대 건축은 개항장 위주였는데, 1947년 항공사진을 보니 그전에 없던 노동자 주택이 엄청나게 늘어난 게 보였습니다. 중구·동구를 넘어 미추홀구, 부평구까지 다양한 지역에 사택이 건설됐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홍현도 학예사가 관영주택과 사택을 조사한 지 딱 10년이 됐다. 홍 학예사가 인천을 떠난 사이 많은 건축물들이 개발 등으로 인해 철거됐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공업도시로 성장한 인천의 역사와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 관영주택과 사택이라면서, 가치 있는 건축물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애경사(2017년 철거), 아베식당(2019년 철거), 제국제마주식회사 사택(2023년 철거), 조사보고집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인천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조선기계제작소에 동원된 근로보국대 합숙소(2016년 철거) 등 정말 많은 근대 건축물이 철거됐습니다. 서울, 부산, 군산 등에도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인천의 사택이야말로 인천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있는 건축물입니다."

2015년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사로 자리를 옮겼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건축을 전공한 학예사를 뽑는 경우가 많지 않아 홍현도 학예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고궁은 문화재청 소관이지만, 궁궐과 가까이에서 근무하게 돼 꿈을 이룬 것만 같았다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학예사로 임용된 첫해 덕수궁과 옛 정동 지역의 모형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정동은 대한제국기 고종이 경운궁(덕수궁)을 건설하고, 주변에 각국 공사관을 설치한 지역입니다. 핵심은 경운궁이란 궁궐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설렜습니다. 건물 하나하나 자료를 찾고 도면도 찾고, 크기가 1㎝밖에 안 되는 창호의 구성이나 벽의 구성을 제가 그려서 모형 제작 업체에 넘겼습니다. 초가집의 초가, 기와집의 기와도 꼼꼼히 고증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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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도 학예사가 주도해 제작한 서울역사박물관의 1900년대 경운궁(덕수궁)과 정동 지역 모형.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홍현도 학예사는 '궁돌이 홍쌤'이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궁궐을 거닐며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최근엔 전통 한복을 차려입고 갓까지 쓰고 외출할 때가 많다. 홍 학예사는 옛날 사람들이 생활할 때 어떻게 생활했는지 더 알고 싶어서 전통 한복을 입는다고 했다.

가족은 어떤 반응이냐고 물었더니 홍 학예사는 "어머니는 한복을 입을 땐 꼭 웃고 다니라고 했어요. 안 웃으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고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홍 학예사는 올해 초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공인 '궁궐 박사'가 됐다. 박사 논문 주제는 '조선 후반기 경복궁의 관리와 운영 연구'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에 타 소실된 이후부터 흥선대원군 주도로 고종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까지, 즉 경복궁이 없던 시기 경복궁(터)에 대한 연구다.

"임진왜란 후 경복궁이 소실되면서 그 자리가 황폐화됐다고 생각하지만, 그곳에서 왕실 행사를 여는 등 경복궁 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경복궁은 없었지만, 쭉 관리돼 왔고 그 역할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건축이 없는 시기를 다룬 건축학과 박사 학위 논문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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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학위를 받은 홍현도 학예사는 인천 지역 건축물을 더 연구하고 싶다고 했다. 기존 홍 학예사가 한 작업은 조사이지 본격적인 연구는 아니었다고도 했다. 인천은 근현대 건축의 숨은 보물창고다.

"인천에서 조사한 건축물이 엄청 많이 남아 있다가 지금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인데, 그때마다 저에게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인천을 떠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질문에 쉽게 답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고향 인천을 생각하면 언제나 아쉽고 그립습니다. 앞으로 인천에 대해 더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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