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습, 수술 그리고 트라우마
상처, 지켜본 동료들도 피해자
그가 돌아왔다. 9급 여성 공무원을 흉기로 세 차례 찔렀던 민원인이 출소했다. 세상의 관심이 온통 최순실 재판에 쏠리던 시기 용인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피해자는 떨고 있다. 모두의 기억에서 희미해졌지만, 당사자의 시침은 다시 6년 전을 가리키고 있다. 지난 3일 만난 그녀는 매 순간 이겨내는 중이라고 했다.
김포 9급 공무원 사망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악성민원 대책 마련에 나선 가운데, 몇 해 전 용인시청 소속 9급 공무원이 동주민센터 민원인의 흉기에 피습당해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척추 깊숙이까지 부상을 입고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서 긴급수술을 받은 피해자는 2년 가까이 신체적·정신적 치료를 이어가다가 휴직 연장 불가 통보를 받고 복직해 있었다. 겨우 추스르고 있던 어느 날 동료에게서 다급히 연락이 왔다.
"그 사람 이쪽으로 다시 오게 된 것 같아."
지난 2018년 3월 9일 금요일 오후. 주말을 앞두고 들떠 있을 여느 직장인과 달리 김가영(가명) 주무관은 초조하게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화로 심한 욕설을 퍼붓던 민원인 A씨 때문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그는 한 달 5만원가량인 난방비 지원문제를 놓고 가영씨를 괴롭히고 있었다. 지원을 안 해주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날따라 가영씨는 A씨에게 전화하는 걸 주저했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대신 통화를 해주겠다며 가영씨를 위로했다.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난방비가 곧 지원될 것이라고 안내전화를 했더니 A씨가 통화내용을 오해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날 오후, A씨는 동주민센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김가영이 누구냐'며 소리 지르는 고압적인 모습에 가영씨는 잠시 고개를 떨궜지만, 동료가 자신의 민원에 대응하느라 곤욕을 치르는 걸 보고는 신분을 밝히며 일어섰다. A씨는 순식간에 가영씨에게 달려들었다.
처음엔 아픈줄도 몰랐다. 숨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민원대 아래로 먼저 몸을 피한 가영씨는 부서장실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갔다. 사태가 정리되고 동료들이 바깥에서 애타게 불러도 가영씨는 한참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잠시 후 피로 물든 자신의 옷을 보고 나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등 부위를 세 차례 찔린 뒤였다.
장시간 수술을 받고 정신이 들었다. 척추뼈가 골절돼 나중에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A씨와 비슷한 연배의 동료가 위문을 왔을 때 가영씨는 이불을 덮고 몸을 숨겼다.
욕설 퍼붓던 A, 통화후 주민센터 찾아와
순식간에 달려들어… 몸 숨겼지만 '출혈'
"걷지 못할수도 있다"… 위문조차 외면
수년 지났지만… "매 순간 이겨내는 중"
초임지서 비극… "가장 씩씩했던 직원"
지금은 사무실 문만 열려도 놀라 '움찔'
당시 함께 있던 직원들도 '자책의 나날'
"나와 같은 일 안돼" 용기 내어 목소리

이후로 달라진 건 없었다. 가영씨의 삶만 달라졌다. 동주민센터는 가영씨의 초임지였다. 출판일을 하다 남다른 뜻을 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뒤 공직에 발을 들였다.
동료들은 가영씨가 주민행사 사회를 맡을 정도로 가장 씩씩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랬던 가영씨는 지금 불특정 다수를 마주쳐야 하는 대중교통조차 버거워하고, 사무실 문만 열려도 움찔거리는 사람이 됐다.
동료들도 집단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외부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던 남성 동료는 자신이 자리를 비워서 그랬다고, 또 다른 동료는 자신이 빨리 뛰어 나가지 못해서 그랬다고 자책했다. 사건을 목격한 동료들은 이 같은 악몽에서 스스로 빠져나와야 했다.
가영씨를 오래 지켜본 한 동료는 "공무원의 의무는 민원인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공무원을 함부로 막 대해도 되는 건 아니다. 공무원을 하대하는 인식이 악성민원으로 이어지고 악성민원이 폭력적으로 진화하는 사례를 숱하게 겪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영씨 사건이 조용히 묻힌 데 대해 그는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안 죽었으니 다행'이라는 정도로 끝내서는 안 된다"며 "기계적인 휴직기간 설정이라든지 부서배치 문제 등 공무상 발생한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국가가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영씨는 올해 초 법무부로부터 A씨가 출소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부터는 오로지 가영씨의 몫이었다.
출소했다는 사실 외에 A씨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다. 시청 조직도상 가영씨의 신상정보는 블라인드 처리돼 있지만, 재치료와 휴직을 혼자 고민하고 있다. 동료들의 배려를 한정 없이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도 가영씨는 직장에 누를 끼치지 않을지 걱정했다. 가영씨는 "청원경찰 배치를 강화하고 민원인의 청사출입이 일정 부분 통제되는 등 시 차원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며 "동료들이 도와준 덕분에 여기까지 버텼지만, 피해 당사자를 위한 제도는 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가영씨는 그러면서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한 건, 나와 같은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김포 공무원이 세상을 등진지 꼭 한 달째, 또 다른 곳에서 숨죽이고 있던 악성민원 피해자의 목소리였다.
용인/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