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인천시립극단 ‘화염’ 막바지 연습

세계 곳곳의 전쟁·갈등 연상…오이디푸스 서사

비인간적 상황 속 존엄 지키려는 사람들 이야기

 

객석 무대로 올린 파격에 극 속 들어가는 체험

영화 ‘그을린 사랑’의 원작…“예술성 극대화”

오는 18~21일 인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인천시립극단 ‘화염’ 연습 장면.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인천시립극단 ‘화염’ 연습 장면.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인천시립극단이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선보이는 연극 ‘화염’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지구에서의 참상을 연상하게 한다.

연극 ‘화염’은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극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이 원작이다. 주인공인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여러 해 동안 침묵하다 세상을 뜬 어머니 나왈의 유언에 따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중동으로 긴 여정을 떠난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자신들의 근원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는 줄거리다.

전쟁과 난민 그리고 폭력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다루면서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서사를 절묘하게 엮은 작품이다. 사건이 벌어지는 ‘중동’은 원작자 와즈디 무아와드가 어린 시절 내전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던 고향 레바논일 수도 있고, 분쟁의 땅 팔레스타인일 수도 있고, 동유럽의 우크라이나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뿌리 깊은 증오와 불신으로 발발한 전쟁과 살상의 역사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악순환의 고리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비인간적 상황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인천시립극단 ‘화염’ 연습 장면.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인천시립극단 ‘화염’ 연습 장면.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지난 9일 오후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의 시립극단 연습 현장을 찾았다. 어머니의 과거를 쫓아 먼저 중동으로 향한 잔느(이수정), 머뭇거리는 시몽(최재민)의 심리를 보여주는 복싱 장면이 동시에 나오는 신이 펼쳐지고 있었다. 연출을 맡은 이성열 시립극단 예술감독이 배우들의 세세한 몸짓이나 한숨 소리까지도 구체적으로 조율하고 있었다. 무대에선 시종일관 강렬한 감정이 표출될 것 같다.

객석을 무대 위로 올려 ‘디귿(ㄷ)자’ 형태로 설치한 파격적 시도를 한다. 관객은 코앞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관전자 입장이 아닌 극 속에 들어간 듯한 무대 구성이다. 실제 객석이 될 위치에서 연습 장면을 관람했는데, 박진감이 넘쳤다. 의자 몇 개만 놓이는 텅 빈 무대를 채우는 건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이다. 가까워진 객석으로 배우와 관객 모두 긴장을 놓치 못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연극 ‘화염’은 국내에서 ‘그을린 사랑’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로 먼저 소개됐다. 그동안 상연된 연극 또한 국내 영화 제목을 따온 ‘그을린 사랑’을 제목으로 삼았으나, 인천시립극단은 원제목을 고수했다. 줄거리를 단순화한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이번 작품에서 풀어낸다.

이성열 예술감독은 “원제목 ‘화염’(Incendies)은 그을린 정도가 아니라 ‘불타오른’ 또는 ‘불타올라서 재가 돼 버린’이란 뜻을 갖고 있다”며 “불길처럼 뜨거운 면과 잿더미 폐허의 모습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작품의 느낌을 살린 것이 원제목”이라고 설명했다.

인천시립극단 ‘화염’ 연습 장면.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인천시립극단 ‘화염’ 연습 장면.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중간 휴식을 포함해 3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 시간의 작품이다. 시립극단 연습 기간도 이례적으로 3개월이 걸렸다. 이성열 예술감독은 줄거리를 쫓아 관람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라고 했다. 추리물 같은 서스펜스와 함께 충격적 반전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이성열 예술감독은 “사람이 사람을 서로 그렇게 미워하고 죽이고 있는 비극을 한 가정의 예를 들어 만든 작품으로, 끝없는 증오를 끊어야 한다는 메시지”며 “인천시립극단의 예술성을 극대화했고, 이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인천시립극단이 올해부터 시작한 ‘해외 명작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자 제91회 정기 공연이다. 윤색 배삼식, 무대미술 이태섭, 드라마투르그 조만수 등이 함께했다. 주요 배역은 정순미(60대 나왈), 황선화(10~40대 나왈), 이수정(잔느), 최재민(시몽), 서창희(니하드) 등이 맡았다.

모든 좌석 3만원이며, 고등학생 이상이 관람할 수 있다. 공연 예매는 인천문화예술회관, 엔티켓, 인터파크티켓, 부평구문화재단에서 할 수 있다.

인천시립극단 ‘화염’ 포스터.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
인천시립극단 ‘화염’ 포스터. /인천문화예술회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