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가 꿈꾼 조선시대 최연소 급제자
암행어사 시절 '지행합일' 몸소 실천
강화도서 글쓰며 무너지는 나라 고뇌

저자 이은영 교수 "그의 문학 작품에
구한말 시대상·양명학 고스란히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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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재 이건창 평전┃이은영 지음. 소명출판 펴냄. 360쪽. 2만9천원


'영재 이건창 평전' 표지
강화학파로도 불리는 양명학의 대가,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1852~1898)은 15살 때 문과에 급제한 조선 500년 최연소 급제자로 역사에 등장했다. 조선 말 격변기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관직에 나아간 이건창은 관료로서의 명성이 아닌 조선 500년 최고의 문장가를 꿈꿨다.

그는 당대 문학을 주름잡은 추금 강위(1820~1884), 창강 김택영(1850~1927), 매천 황현(1855~1910)과 더불어 '한말사대가'(韓末四大家)로 불렸다. 이들 네 사람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의 정점이 이건창이었다. 유고 시문집 '명미당집'과 '당의통략' '독역수기' 등은 후대에도 문장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했다.

한편 관직에 나온 이건창은 1874년 동지사 서장관으로 연경(베이징)에 사행을 다녀왔으며, 두 번의 암행어사를 지냈다. 모함으로 인해, 충심으로 올린 상소문으로 인해, 명예로운 관찰사직을 세 번이나 고사했다가 3번의 유배를 겪기도 했다.

이건창은 양명학의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을 몸소 실천하며 민초들의 고된 삶과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한 예로 충청우도 암행어사 시절, 당시 실세 중 한 명인 조병식을 탄핵했다. 조병식은 동학농민운동의 발단인 고부군수 조병갑의 사촌이자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의 조카였다. 이건창은 어떠한 회유와 위협에도 흔들림 없이 조병식의 죄를 낱낱이 조정에 알렸다.

'영재 이건창 평전'을 쓴 이은영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는 '500년의 양심, 천년의 문장, 갈림길에 선 암행어사'란 부제를 달았다. 저자는 "이건창의 문학 작품에는 암행어사 시절 어떠한 이끗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낸 조선왕조 500년의 근대적 양심, 고려 때부터의 천년과 앞으로의 천년을 이어갈 최고의 문장, 그리고 관료로 남아 개화로 달려갈 것인가, 강화도에서 천년의 문장을 지켜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고 평했다.

저자는 이건창의 생애 속에서 강화도와 양명학, 한말 문장가들의 교유, 척화와 개화의 갈등을 비롯한 시대상을 날줄과 씨줄을 엮듯 엮어냈다. 이건창의 당대 문장들도 읽기 쉽게 풀어 수록했다.

저자가 평전 서문을 쓰고자 작은 섬 모도(현 인천 옹진군 북도면)의 옛 주민들이 암행어사 이건창의 은혜를 기리기 위해 1885년 세운 '영세불망비'를 찾은 시점이 2021년 8월이다. 평전을 완성하기까지 수 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책과 함께 '추금 강위 평전' '매천 황현 평전'(이상 소명출판), '창강 김택영 평전'(학자원) 등 한말사대가 평전이 최근 한꺼번에 출간됐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