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한파에도 年900억 매출… "미래 먹거리 준비한 결과"
2004년 사업 확장… 당시 매출 10배 차이 남동산단 하이텍 공장 인수
주 소비재 아니던 의료·항공우주 장비로 영역 확대… 앞서간 행보
경험에서 우러나온 과감한 판단력… 직원 발전에도 아낌없이 투자
국내에 '1인 기업'이라는 개념이 생소했던 1997년 봄, 20대 중반의 한 여성이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과감하게 PCB(인쇄회로기판) 설계 기업을 창업했다. 창업자금으로 모은 돈은 1천만원 남짓. 그마저도 사무실 임대료를 빼면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시장을 잡고 있던 PCB 설계 분야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 도전장을 낸 이 1인 기업은, 27년이 지난 지금 350명의 임직원을 둔 인천의 대표적인 강소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한파에도 9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린 (주)이오에스 이야기다.
■ '낮에는 영업, 밤에는 설계' 매진한 사업 초창기
이오에스는 지난달 4일 열린 '제58회 납세자의 날' 시상식에서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산업훈장 가운데 금탑과 은탑에 이어 3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동탑산업훈장을 중소기업이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오에스 김미경 대표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주로 받는 영예로운 훈장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이오에스 창립 20주년을 맞은 올해 수훈하게 돼 더욱 뜻깊다"고 했다.
김 대표는 1997년 이오에스아이라는 1인 기업을 창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컴퓨터지원설계(CAD) 관련 기업에서 일하다가 PCB 설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돌파하면서 전자제품 시장이 급성장하던 시절, PCB 산업 역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낮에는 PCB 설계도 납품을 위한 영업을, 밤에는 설계 작업에 매달리는 일상의 연속이었다"며 "집에서 잠을 자는 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일했다"고 했다.
■ 설계부터 제조까지 원스톱으로… '이오에스'의 탄생
성실성에 꼼꼼함이 더해지면서 김 대표가 제작한 PCB 설계도는 업계에서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하지만 그는 설계도 납품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직접 PCB를 제작하는 제조업까지 사업을 확장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기회는 가까운 곳에서 찾아왔다. 김 대표의 남편인 정채호 이오에스 공동 대표이사가 당시 재직 중이던 인천 남동산업단지의 PCB 제조기업 하이텍의 공장 건물이 매물로 나오자, 두 사람은 과감하게 이 공장을 인수하고 기업을 확장하기로 했다. 그렇게 PCB 설계부터 제조, 부품 조립까지 모든 공정을 아우르는 원스톱 PCB 전문기업 이오에스가 2004년 탄생했다.
이오에스 설립 당시 회사의 매출 규모는 10억원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반면 하이텍의 연 매출액은 130억원에 달했는데, 매출 규모가 10배나 큰 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이러한 결정을 내린 건 이미 레드오션이 된 PCB 시장에서 차별화된 길을 걷기 위함이었다.
김 대표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PCB 업체는 4천개에 달했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다"며 "시장에서 요구하는 PCB의 트렌드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는데, 이를 따라가려면 대량 생산이 아닌 다품종 소량 특수보드 생산 분야의 투자를 확대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PCB가 쓰이는 분야는 주로 자동차 엔진과 전장, 컴퓨터와 TV 등 소비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오에스는 이 시기부터 의료장비와 안전·보안장비, 한 발 더 나가 항공우주와 군사·방위 산업 분야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항공우주와 군사·방위 기술 분야는 2005년 당시 국내에서 생산되는 PCB가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이오에스는 고부가가치 PCB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다.
김 대표는 "당시 국내에는 PCB의 품질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고, PCB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항공우주 분야의 생산 납기를 맞추기도 어려웠다"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PCB 품질 기준을 표준 삼아 이오에스 만의 특화 기술을 갖추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 인공위성·방위산업 등 국산화 사업 기여…'금탑산업훈장이 다음 목표'
이오에스의 이후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2010년부터 민간상업용 위성 등에 자사 부품을 납품하기 시작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2018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주도한 '위성PCB 제작 국산화 사업'에도 참여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쏘아 올린 위성은 부품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왔으나, 이오에스가 제작한 PCB 제품이 활용되면서 국산화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방위산업에서도 이오에스의 성장세는 크게 두드러졌다. 레이더와 미사일, 드론 등에 쓰이는 PCB 역시 이오에스의 제품인데, 지난해 미국 등으로 수출이 30% 가까이 늘면서 효자 노릇을 했다. 경기 침체로 반도체 시장이 위축돼 국내 PCB 업계도 타격을 받았지만, 오래전부터 사업 다각화를 준비해온 김 대표의 안목이 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김 대표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변화하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창업 시절부터 체험해왔다"며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끊임없이 하려는 이유도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라고 했다.
기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는 게 김 대표의 지론이다. 이오에스는 지난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청년친화강소기업 인증을 받았는데, 전체 임직원의 40%가 청년(37세 이하)이고 평균 근속연수도 8년 5개월로 제조업 분야에서 상위권에 올랐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규입사자를 대상으로 경력형성장려금 제도를 운영해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도록 지원하는 등 개개인의 발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김 대표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금탑산업훈장도 수훈할 수 있도록 기업을 성장시키는 게 목표"라며 "창립 20년을 맞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변화하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김미경 대표이사는?
▲1973년 경남 진해 출생
▲중앙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인기업 이오에스아이 설립(1997년)
▲이오에스(주) 설립(2004년)
▲이오에스(주) 대표이사(2004.2 ~ 현재)
▲한국 국제표준(IPC)교육센터 솔더링기술그룹 활동(2020 ~ 현재)
▲한국산업단지 경영자연합회 이사 활동(2024.1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