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가! 우가!… 이렇게 환상적인 곳이! 라떼는 상상도 못했어!
진천역 주변 대형토기·커다란 옥색목걸이 ‘대릉옥’
라스코 동물 벽화 그려진 건물… 거리가 곧 박물관
선사유적공원엔 청동기시대 제사 유구 진천동입석
로봇이 안내하는 달서 선사관, 교육 체험공간 마련
대구 달서구 한복판에 원시인이 나타났다. 몸에는 동물 가죽을 걸치고 한 손에는 방망이를 들었다.
사람들이 다가서자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돌도끼까지 꺼내든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소리치기 시작하는데…. "우리 집 밥그릇이 왜 저기 올라가 있는 거냐! 빨리 내려 달라! 우가! 우가!"
■ 원시인이 길 안내·거대 유물 모형이 척! '거리 박물관'
원시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은 도시철도 2호선 진천역 3번 출구. 역으로 향하는 계단 지붕에 2.5m쯤 되는 둥근 대형 토기가 얹혀 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토기의 3분의 1 되는 부분은 지붕에 쏙 박혔다.
지하철 출구 옆 엘리베이터 지붕 모서리에는 비슷한 크기의 대형 옥색 목걸이가 걸렸다. 신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된 구슬 '대릉옥'이다. 목걸이를 보고 원시인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친다. "우리 할머니가 조상님들께 물려받은 장신구라고 했다! 빨리 꺼내 달라! 우가 우가!"
달서구 월배로와 상화로 일대에는 대형 유물 모형이 놓여 있다. 거리가 거대한 야외 박물관인 것이다. 건물 벽 곳곳 선사시대 라스코 동물 벽화가 그려져 있고 화단에는 높이 3m가량의 돌칼이 비스듬하게 꽂혀 있다. 표지판을 부수고 있는 원시인 모형부터, 길목마다 가는 길을 안내해 주는 원시인 배너까지. 한 원시인(모형)은 벽에 매달려 벽화까지 그리고 있다.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모형을 보고 원시인은 멈칫한다. 과거와 현재가 혼동되는 듯 머리를 갸우뚱댄다. 하지만 4차로 한가운데 누워있는 거대 원시인 조형물을 보며 이내 현실을 자각한다. "뭐야! 왜 이렇게 커! 게다가 돌이잖아? 저건 가짜 원시인이다! 우가 우가!"
거대 원시인의 크기는 무려 20m. 거대 원시인에게는 '이만옹(二萬翁)'이라는 이름도 있다. 2만년 역사와 노인의 존칭인 옹(翁)을 합성한 것이다. 코로나 때는 마스크를 꼈고, 성탄절에는 산타모자를 썼으며, 설날에는 복주머니까지 달았다. 이러한 친근한 모습의 이만옹은 2024년 달서구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 선사시대 다양한 생활 문화상 한자리 '유적공원'
진천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선사유적공원을 발견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청동기시대 제사 유구인 '진천동 입석'이 있다. 입석은 큰 돌을 세워 놓은 것으로 '선돌'이라고도 하는데 이 '선돌'은 마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원시시대 신앙의 역할을 했다.
"제사 지낼 때 이 진천동 입석에 분명 무늬를 그렸었는데…그래! 보이네! 여기 보인다! 우가! 우가!" 원시인이 처음으로 활짝 웃는다. 진천동 입석 표면에 그려진 6개의 성혈과 동심원을 발견했기 때문.
6개의 성혈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데, 청동기 원시 신앙 흔적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동심원 또한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를 갖췄다. 이는 당시 달서구 땅에 거주한 사람들의 미(美) 의식과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공동제의 현장을 찾았으니 원시인은 더 바삐 움직인다. 동시에 꽤 먼 미래로 온 것 같은데 자신의 터전이 보존돼 있는 이곳이 궁금해진다. 그때 한 여성이 원시인에게 말을 건다. 그는 선사유적공원 문화 해설사다. "청동기 시대에서 왔나 봐요? 진천동 입석을 아는 걸 보니 말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는 참 살기 좋죠?"
선사유적공원이 공동제의의 유적이라면 한샘청동공원은 장례, 선돌공원은 생활, 조암구석기공원은 생산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다. 한샘청동공원에는 지배계급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이 서 있고, 선돌공원에는 선사시대 집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조암구석기공원 인근에서는 무려 2만년 전 구석기 유물 1만3천184점이 발견됐다고. 이로 인해 달서구는 대구의 5천년 역사를 2만년으로 확장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니! 2만년 전 우리 조상님 흔적도 여기서 발견됐다는 건가! 미래로 온 김에 자세히 좀 보고 가야겠다! 우가! 우가!"
■ 선사유적 체계적 관리 위한 거점시설 '달서 선사관'
문화 해설사의 안내를 받아 달서 선사관에 도착한 원시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위잉-' 대며 로봇이 다가온다. 처음 보는 로봇의 모습에 원시인은 잔뜩 긴장한다. 돌도끼로 머리를 쿵! 내리쳐 보지만 튼튼한 로봇은 꿈쩍도 않는다.
"아휴! 그렇게 막 다루면 안 돼요. 이 친구는 우리 달서 선사관의 마스코트 안내로봇 '선돌이'랍니다." 해설사의 말에 원시인은 로봇을 천천히 살펴본다. 안내 인사는 물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친절함까지 과시한다. 그리고 선돌이는 전시관 안으로 원시인을 이끈다.
1층 전시실은 구석기 시대부터 신석기, 청동기까지. 달서구의 2만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공원의 테마와 마찬가지로 생산, 공동제의, 생활, 장례. 선사시대 4개의 콘셉트로 나눠 전시돼 있다.
원시인은 우선 구석기시대 석기 제작 과정 장면을 유심히 살펴본다. 특히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됐다는 흑요석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게 우리 조상님들의 도구란 말이지? 너무 신비롭군. 우가 ! 우가!"
청동기시대 집터를 설명해 놓은 전시 앞에서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우리집이다! 우가 우가!"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탓에 한차례 소동을 빚기도 했다고. "여기 참 신기하네! 우리 모습을 이렇게 잘 보존해주다니. 정말 고맙다. 우가!우가!"
달서 선사관 2층에는 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갈돌과 갈판으로 곡식을 직접 갈아보고, 깨져 있는 토기를 복원해볼 수 있다. 움집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으며 큰 화면에 지나다니는 동물들을 사냥해 볼 수도 있다.
체험관 맞은편 디지털 선사관에서는 한층 더 실감 나는 체험이 가능하다. 2만년 달서구의 역사를 미디어 아트로 표현함으로써 직접 유적 속으로 들어가 원시인을 만나거나 유적을 만져볼 수 있다.
원시인도 이제 과거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 2만년 역사를 간직한 달서구를 둘러보다보니 해가 뉘엿뉘엿 져간다. "하마터면 시간 여행 온 줄 모를 뻔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기는 참 살기 좋다. 우가! 우가!"
그리고 해설사의 한 마디에 아쉬움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아참! 5월 17일부터 한샘청동공원에서 달서선사문화체험축제가 열려요. 아휴, 원시인님~ 그것도 보고 과거로 돌아가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그죠?"
■ 망치 탕수육·움막 갈비… 먹거리 한가득
입안 가득 '우적우적'… 선사시대 맛 좀 봐라
꼬르륵! 원시인의 배꼽시계가 요란하게도 울린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하다. 킁킁! 그리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 눈앞에 나타난 달토기빵에 원시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내가 어제 만들었던 붉은간토기잖아!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 우가! 우가! 한 개만 좀 달라! 우가! 우가!" 한입 베어 물자 쫄깃쫄깃한 식감! 두입 베어 무니 크림치즈의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달서구는 2만년 구석기 유적 문화관광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선사유적 콘텐츠와 연계한 먹거리 상품 개발에 나섰다. 이에 달서구 선사시대로에서 출토된 붉은간토기를 형상화한 홍보빵을 개발했다. '달토기빵'은 관내 18곳 빵집에서 판매하고 있다.
선사시대 테마거리에는 선사시대에 온 듯한 먹거리도 가득하다.
원시인이 살던 움막 모습의 '움막갈비', 돌도끼로 돌을 부수듯 망치로 껍질을 깨서 먹는 '망치 탕수육', 돼지고기를 고인돌 받침모양으로 튀겨서 밑에 받치고 그 위에 돈가스를 올린 '고인돌 돈가스', 토기무늬를 넣은 빵 속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달토기버거', 날카로운 창에 족발을 매달아 사냥 후 먹던 모습을 재현한 '화살촉 족발'.
선사시대를 옮겨 놓은 듯한 먹거리의 향연에 원시인은 군침을 삼킨다. "이거 다 먹어보려면 나 정말 못 돌아가겠다~ 우가! 우가!"
/매일신문=임소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