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의 위험한 놀이'
자전적 이야기·시대정신으로 미술계 주목
아이들 전쟁놀이 빗대 '참혹한 현실' 표현
제각각 개성있는 가면 등 인간 군상 축소
안창홍이 그리는 현실 세계는 적나라하기에 때로는 더욱 애달프다. 그는 자전적인 이야기와 감정을 화폭에 가감 없이 쏟아내면서도 시대정신을 외면하지 않은 작품으로 동시대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더불어 '가족사진', '위험한 놀이', '49인의 명상'과 같은 독보적인 개성을 갖춘 연작을 발표하며 한국 미술계에 걸출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소위 말하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 후 그림에 매진하며 'POINT현대미술회', '현실과 발언'과 같은 그룹에서 활동하였다. 1989년에는 경기도 양평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왕성히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인 '위험한 놀이'는 안창홍의 초기 연작에 속한 작품이다. '위험한 놀이' 연작은 아이들이 행하는 전쟁놀이에 빗대어 인간의 본능적인 폭력성과 참혹한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넓게 펼쳐진 벌판에서 아이들의 '위험한 놀이'가 한창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창과 칼을 손에 쥐고 쓰러진 인형 더미를 딛고 서 있다. 들판 위 늘어선 기하학적인 구조물과 얼굴과 표정을 가면으로 가린 채 익명성을 띤 아이들의 모습은 언뜻 비디오 게임의 한 장면처럼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생명력을 잃고 쓰러진 천 인형과는 달리 아이들이 쓴 가면은 어느 것 하나 같지 않고 제각각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또한, 크고 용맹해 보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 놀이가 버거운 듯 다른 이에게 안긴 작은 아이도 있다. 아마도 이는 작가가 구현한 인간 군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화면 오른쪽 뒤편의 투구벌레 가면을 쓴 아이는 눈앞의 비참한 광경을 그저 관망하듯 서있다. 그러나 뾰족한 가면 사이로 삐져나온 말간 살갗에서 비로소 이들 모두가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임을, 이 모든 광경이 상상이 아닌 현실임을 깨닫게 된다.
'위험한 놀이' 연작이 그려진 1980년대 초는 주지하듯 12·12 군사반란으로 세력을 잡은 신군부가 들어서고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격동의 시대였다. 안창홍은 당대 인간성을 상실한 세태와 무감각하게 폭력을 자행하던 현실을 작품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조은솔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