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 새얼역사기행' 영주·경주
문무왕릉 보이는 곳 우현 추모비
제자 등 일제저항시 '대왕암' 새겨
"인천시민의 비 세워보자" 제안도

인천 출신 한국 최초 미술사가 우현 고유섭(1905~1944)의 청동 좌상이 있는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찻길로 약 380㎞ 떨어진 경북 경주시 감포읍 이견대 아래쪽에는 우현의 가족과 제자, 개성 출신 인사들이 세운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추모비가 있다. 추모비 양옆으로 우현의 수제자이자 '개성삼걸'로 불리며 한국 미술사학의 주축이 된 초우 황수영(1918~2011) 박사와 수묵 진홍섭(1918~2010) 박사 등의 추모비 등이 세워졌다.
새얼문화재단이 주최한 제36회 새얼역사기행의 참가자 80여 명은 지난 26일 오후 2시 30분 용당포 바다의 문무대왕릉(대왕암)이 한눈에 보이는 우현 추모비를 찾았다.
25~27일 새얼역사기행의 한가운데에 있는 일정이었다. 이곳에서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제자들만이 아니라 인천시민의 비를 세워 보자"며 "뜻이 있고, 모양도 좋고 글도 좋고 참여하는 사람도 좋은 그런 비를 (경주시 등과 협의해) 세우자"고 제안했다.
1992년 8월 새얼문화재단이 '새얼문화대상'을 제정해 제1회 수상자로 우현을 선정하고, 그 상금으로 인천시립박물관 뜰에 우현의 청동 좌상을 건립한 지 32년이 지난 올해는 우현 80주기다. 한국 미술사학과 미학을 개척한 우현 고유섭은 경주 대왕암 답사와 관련한 글만 세 차례 써서 발표했다.
추모비는 우현이 1939년 8월 '고려시보'에 실은 경주 기행문 '나의 잊을 수 없는 바다'를 기념했다. 우현은 '대왕암'이란 제목의 시를 지어 이 글 안에 넣었다.
'대왕의 우국성령은/ 소신(燒身·몸을 불사른) 후 용왕 되사/ 저 바위 저 길목에/ 숨어들어 계셨다가/ 해천(海天)을 덮고 나는 /적귀(敵鬼)를 조복(調伏·악을 항복시킴)하시고'
우현 추모비 뒤에 새겨진 '대왕암'의 첫 소절이다. 죽어서도 용이 돼 왜구 침입을 막고자 수중릉을 택한 문무대왕을 다룬 시와 글을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 정책이 점점 깊어지던 시대에 발표했다니, 그 아슬아함이 새얼역사기행 참가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들은 인근 이견대에 올라 맑고 푸른 하늘과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문무대왕릉을 한참 바라보거나 기념 사진을 촬영했다.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이번 역사기행 일정에서 해설을 맡아 준 김상열 한국이민사박물관장은 "고유섭 선생은 일본과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대왕암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라며 "우리가 일본과 다른 것은 문무대왕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우현은 1940년 7월 '고려시보'에 발표한 '경주 기행의 일절'에서도 "경주에 가거든 문무왕의 위적(偉積)을 찾으라. 구경거리로 경주로 쏘다니지 말고 문무왕의 정신을 기려보아라"고 했다.

제36회 새얼역사기행은 25일 경북 영주 소수서원과 부석사, 안동 봉정사, 경주 동궁과 월지, 26일 경주 석굴암, 동리목월문학관, 불국사, 문무대왕릉, 우현 추모비, 감은사지, 27일 금령총과 대릉원, 국립경주박물관, 무열왕릉 순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석굴암, 불국사, 문무대왕릉, 감은사지 등은 우현의 발자취를 더듬는 일정이었다. 참가자들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부석사와 봉정사에선 "법당만 절이 아니다. 일주문부터 올라가는 과정이 절이고, 그 과정을 가장 잘 담은 절이 봉정사"라는 지용택 이사장 해설을 새기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동리목월문학관에서 한 참가자는 "인천에 지역과 인연이 깊은 문학가 등 인물을 기념하는 기념관이나 문학관이 없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주·경주/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