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파생 '눈에 보이는' 산줄기
생태계 양호… 법적 보호 받지못해
골프장·상업시설에 자연 크게 훼손
사유지·산단 등 등산객 발길 돌려
멸종위기종 다수 서식 가치 높아
군사시설 곳곳 포진에 등반 제약
유네스코 서삼릉 등 보전 필요성
문화재 주변 목장 환경오염 계속
한북정맥 경기도 구간의 산줄기가 잘리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건 포천 광덕고개와 파주 장명산만의 일이 아니다.
기획취재팀은 경기연구원의 '경기도 한북정맥 훼손유형 연구' 조사에 기초해 4월22일부터 이달 3일까지 2주간 현장을 찾았다.
2008년 당시 연구는 160㎞가량에 이르는 한북정맥 산줄기 중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제 1·2구간을 제외하고 경기도에 속한 포천(제 3구간)부터 파주(제 12구간)까지 총 10개 구간으로 이어진 능선을 대상으로 5개월여간 진행됐다.
취재팀이 현장에서 눈에 담은 양주, 가평, 고양, 파주 등에 걸친 한북정맥의 주요 산줄기는 각종 도로와 택지, 골프장 등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거나, 여전히 개발이 한창이었다. 등산로 일부는 길의 모양만 겨우 갖췄을 뿐 이정표가 바닥에 뒹구는 등 정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 정맥, 눈에 보이는 '연결의 가치'
한북정맥의 가치를 설명하려면 정맥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 정맥은 눈에 보이는 산줄기다.
조선후기 신경준이 편찬한 지리서 '산경표(산의 경계표)'에서 백두대간과 함께 거기서 뻗어나온 13개의 산줄기인 정맥이 체계화됐다. 산이 물을 가른다는 뜻의 '산자분수령'의 원리로 정립된 이 체계는 산지의 연결에 핵심을 둠으로써 '산맥' 개념이 산속의 지질구조에 바탕을 둔 것과 차이를 이룬다.
경기연구원은 "국토를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정맥 개념이 용이하다"면서 한북정맥에 대해 "경기도 자연환경의 보고로서 보전돼야 할 핵심녹지지역"이라고 당시 연구의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 왜 한북정맥인가
한북정맥은 국토의 '뼈대'인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정맥 가운데 하나로, 오염원이 적은 데다 많은 지역이 군사보호구역에 해당돼 생태계 보전상태가 매우 양호한 산줄기로 꼽힌다.
얼레지, 왜박주가리, 금강초롱 등 희귀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는 것은 물론 계곡에는 쉬리, 퉁가리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두대간과 함께 환경단체 등에서 2000년대 초 복원 필요성이 언급됐다. 이쯤부터 한북정맥은 등산객들 사이에서도 생태 종주 코스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4년 백두대간이 '백두대간보호에관한법률' 지정 등으로 법적 보호를 받게 됐지만, 정맥은 예외였고 지금까지 법 밖의 존재로 방치돼 있다. 그러는 사이 한북정맥은 점점 잊히고 파괴돼 왔다. 특히 파주 운정, 양주 옥정·회천 등 대형 신도시가 정맥 전부를 도려내고 자리 잡은 건 다른 정맥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한북정맥은 개발 흐름이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남은 정맥이 마주할 위기를 보여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한북정맥의 실상을 되짚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국망봉~축석령(포천/제 4~7구간)
"등산로로 착각해 올라오는 사람이 아직 있죠."
포천 광덕고개에서 백운산 한북정맥 능선을 따라 자리 잡은 도성고개. 민둥산과 국망봉으로 향하는 포천의 주요 등산로 중 하나인 도성고개 등산로가 끊긴 건 5년여 전 골프장이 산허리에 들어선 뒤부터다.
취재진이 내비게이션 목적지로 '도성고개'를 찍고 차로 올랐을 때 마주한 곳 역시 골프장 입구였다. 산허리를 자르고 완만히 자리 잡은 골프장은 언제 산이었냐는 듯 말끔히 정비된 채 성업 중이다.
골프장의 한 직원에게 이곳이 과거 등산로였던 사실을 묻자 "골프장이 세워진 뒤 여전히 등산로 고갯길인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산림청이 진행한 '백두대간과 정맥의 산림자원 실태와 변화조사'를 보면 한북정맥 내 골프장은 16개소(2020년)로, 2014년에 비해 6곳이나 늘어났다.
국망봉은 신로봉에서 이어지는 너른 '능선뷰' 덕에 포천의 주요 등산길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취재진이 찾은 이곳의 등산로는 초입부터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국망봉 등산코스 3곳 중 2곳을 사유림이 점하고 있지만, 명확한 안내가 없어 사유림 매표소 앞에서 등산객 출입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캠핑장으로 정비돼 운영 중인 사유림 바로 아래 능선면에는 대규모 생수공장이 가동 중이었으며 크고 작은 오토캠핑장도 여럿 눈에 들어왔다.
한북정맥하면 군사시설을 빼놓을 수 없다. 정상부에 군부대가 자리한 포천 수원산도 그중 하나다. 이런 이유로 등산객들에게 수원산은 '온전한 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실제 수원산전망대를 거쳐 수원산 정상에 오르는 짧은 등반코스에서 갖가지 제약사항이 발목을 잡았다. 정상으로 향하는 표지판만 멀쩡했을 뿐, 등산로 군데군데 참호가 파여 있어 안전한 산행이 어려웠다. 보안시설 탓에 우회로를 통해 정상에 올랐을 때 불청객처럼 "여기는 군사지역입니다.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 달라"는 군부대의 알림이 사방을 울렸다.
■ 축석령~울대고개(양주/제 8~10구간)
파주, 양주, 가평 등 경기북부 주요 시군에 세워진 신도시도 한북정맥을 할퀴었다.
양주의 옥정·회천지구는 막은고개에서 샘내고개에 이르는 한북정맥 산림을 무수히 개발하고 올라섰다. 현장에서 본 회천지구 일부 구간은 2027년 준공을 목표로 대규모 고층 아파트 건설에 한창이었다.
2000년대 초 만들어진 한승아파트 뒤편 샘내고개 줄기는 경원선 철도가 가로질렀고, 좌우편에는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된 아파트 단지와 개발을 앞두고 바닥을 평평히 다져놓은 대지가 나란히 펼쳐졌다.
과거 정맥이었을 이곳의 산세는 주거·상업시설은 물론, 크고 작은 도로가 깔려 형체를 잃었다.
■ 솔고개~장명산(고양·파주/제 11~12구간)
"동물농장이 왜 문화재 곁에 있을까요?"
숯돌고개(고양시 덕양구)는 한북정맥의 능선이자 요근래 시민들의 관심이 부쩍 모이고 있는 곳이다. 고개 아래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 중 하나인 효릉을 품고 있는 사적 서삼릉이 있는데, 효릉이 최근 일반에 공개돼서다. 취재진도 정맥의 다른 구간과 달리, '보전구역'일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농협대학과 능선 언덕을 지나 서삼릉에 닿자, 이내 정체를 알 수 없는 분뇨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삼릉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한국마사회의 말목장과 농협의 젖소개량사업소에서 발생하는 악취였다.
이날 서삼릉 앞에서 만난 천모(60)씨는 "유명한 문화재 주변에 젖소 공장과 말 농장이 들어서 환경오염이 진행중인 게 늘 의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에게 한북정맥의 인지 여부를 추가로 묻자 "잘 몰랐다"라면서도 "역사적인 데다, 환경적인 가치까지 있으니 산림복원과 보전의 필요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뿐 아니었다. 숯돌고개 능선을 따라 두 곳의 골프장이 들어선 채 산줄기를 갈라놓고 있었다.
백두대간에서 160㎞가량 뻗어나온 한북정맥의 마지막 구간인 파주 장명산. 채석으로 산 단면이 잘려나간 반대면에는 산업단지가 들어찼고, 시야 저 멀리에는 운정신도시 신축 아파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장엄한 산줄기는 이제 온데간데없는 모습이다. 산을 둘러싼 공릉천 물줄기만이 옛 모습 그대로 한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최재훈 본부장(지역사회부), 조수현·김산 기자(이상 사회부), 임열수 부장(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