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상흔 '한북정맥'
포천 국사봉 시끄러운 기계소리
산줄기 한면 U자형 파먹은 산단
아래는 중장비들 분주하게 작업
양주 유양동 판잣집·폐공장 즐비
경기도의 복구·정비 공언 헛구호
무방비 상태로 곳곳은 '회복 불능'
경기도는 지난 2008년 '한북정맥을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한북정맥 능선을 따라 경기북부 주요 신도시들이 들어서며 정맥 훼손이 우려되던 시기였다. 이에 도는 한북정맥 보호를 위한 연구 용역을 경기연구원에 맡겨 그 결과를 토대로 복원사업 등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도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한북정맥 훼손현황과 보전방안을 담은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도 차원의 복원사업과 제도정비는 추진된 바 없다. 도의 공언이 무위에 그치면서 무방비 상태에 놓인 한북정맥 곳곳은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달 24일 오전 10시께 포천시 내촌면 국사봉 진입로. 바닥에 널브러진 '한북정맥 등산안내도'를 거쳐 구분선 없는 흙길을 1시간 가까이 올랐다.
산행로 우측 접근금지선이 둘러쳐진 낭떠러지가 나타났고, 희미하던 기계소리는 굉음으로 변해 귀청을 때렸다. 낭떠러지 아래 황토색 절벽과 벌판 이리저리 쌓인 회백색 바위들이 펼쳐졌다. 그 사이로 중장비들이 철골조 시설 사이로 바삐 작업을 이어갔다. 이는 산줄기 한 면을 U자형으로 파먹은 1만㎡(3천평)규모의 일반산업단지 모습이다.
이날 확인한 현장은 과거 경기연구원이 지적한 상태보다 심각했다. '대규모 채석장'이 한 공장 크기로 정맥을 훼손하고 있다고 당시 조사됐는데, 산업단지 규모로 인해 훼손 반경이 커진 것이다.
양주시 유양동의 한북정맥 능선면 역시 산 한쪽을 갉아낸 듯 낡은 판잣집들과 벽면이 벗겨진 폐공장들이 즐비했다. 1980년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이곳에 주거촌을 형성한 이후, 가구 공장과 소규모 제조업 공장이 들어찼다. 이어 이 지역이 그린벨트로 지정돼 단속이 이뤄지자 폐건물만 남아 과거 모습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한북정맥 훼손지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경기연구원과 산림청의 정맥 산림자원 실태·변화조사를 종합하면, 훼손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악화일로다. → 표참조
주목해야 할 점은 훼손 정도를 판가름하기도 어려운 '복합 훼손지'마저 나타난 점이다. 이미 정맥을 통째로 도려낸 신도시 등 주거·상업지역이 정착돼 복합 훼손지라는 별도의 유형까지 생겨났다. 복합 훼손지(2020년 기준)는 모두 8개소로 조사됐으며, 거리로만 26.4㎞에 이르는 정맥을 통째로 훼손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산줄기(160㎞가량)의 16.5%가 이미 소실돼 회복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도 차원의 산지관리 목적 대책은 앞서 두 차례(2015·2022년) 발표된 '경기도 산지관리지역계획'이 유일하다. 이마저도 산지관리법상 중앙단위 종합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의무적으로 후속 이행된 것이었다. 강제성이나 구속력 없는 현황 진단에 불과한 계획이었는데, 앞서 제1차 조사에서 지적된 훼손실태나 개선사항이 제2차 계획에 그대로 담겨 있다.
도는 정맥의 상징성과 가치를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예산 문제 등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밝혔다.
도 관계자는 "복원사업을 시행하는 주체나 산림청 공모사업에 지원하는 주체가 시장·군수인데 도가 수요조사를 해도 신청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며 "각 지자체마다 정맥 복원을 우선순위로 추진할 만큼 예산이 충분하지 않거나 사유지 재산 문제로 얽혀있는 등 다양한 요인이 배경에 있다"고 했다.
→관련기사 (허울 좋은 한북정맥 보호대책… 결과는 '누더기 산줄기' [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2)])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최재훈 본부장(지역사회부), 조수현·김산 기자(이상 사회부), 임열수 부장(사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