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에 걸맞는 극장 60여곳 흔적 쫓아
■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윤기형 지음. 동연 펴냄. 383쪽. 3만원

조선에는 개항 전까지 실내 극장이 없었다. 줄타기나 남사당패 같은 마당놀이가 저잣거리에서 공연됐다. 반면 일본은 분라쿠, 가부키 같은 연희가 실내 극장에서 발달했다. 개항과 함께 조선에 일본인들을 위한 실내 극장이 처음 들어섰고, 부와 권력을 가진 조선인은 조선인 극장을 세울 수 있었다.
부산, 서울, 대구, 광주 그리고 인천에 실내 극장이 설립됐다. 지금까지 당시 최초의 극장 계보를 이으며 남아있는 곳이 1895년 인천에서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 '협률사'로 시작한 '애관극장'이다. 애관극장은 인천 중구 경동 싸리재에서 여전히 영화를 틀고 있다.
저자는 한국 극장 역사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출발점이 곧 인천의 영화 역사이기도 하다. 개항 초기에서 해방 전까지 인천에 있던 인부좌, 인천좌, 가부키좌, 죽원관, 낙우관, 표관, 인천영화극장(인영극장), 부평영화극장(부평극장)의 기록을 찾고, 이후 '영화도시 인천'이라 불릴 만큼 많았던 60여 곳에 달했던 극장의 연혁과 흔적을 기록했다.
저자는 기록의 과정에서 인천의 영화와 관련된 인물들을 거의 다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가운데 인천 옛 극장의 명맥을 잇고 있는 미림극장에서 과거 간판을 그렸던 김기봉 화백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1950년대 말쯤 홀쭉이와 뚱뚱이로 유명한 양석천과 양훈이 쇼를 위해 애관에 왔는데, 배우들이 애관에 오면 애관 뒤에 있는 여관에 머물렀다. 그 당시 빈대가 많아 여관에서 잠을 자기 힘들면 극장 무대 밑에 사과 상자를 이어 그 위에 이불을 깔면 시원하고 빈대 걱정 없이 잘 수 있었다."
저자인 윤기형 영화감독은 2021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를 연출했다. 애관극장과 미림극장에 대한 다큐인데,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인천의 영화사를 이번 책에서 다 다뤘다. 애관극장이 보전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