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이상국집 통해 생활상 생생 복원
문헌 첫 생선회·반려동물문화 등 확인
■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강민경 지음. 푸른역사 펴냄. 388쪽. 2만원
천재 문인으로 당대 이름을 날린 이규보. 그러나 그도 과거에 합격하고도 오랜 기간 관직에 오르지 못해 개경의 고관들에게 구직을 하는 시를 지어 바치러 다녔던 '취업준비생' 시절이 있었다. 시와 술, 거문고를 좋아해 스스로를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부른 이규보. 술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절까지 퍼져 오죽하면 스님이 술상을 내올 정도였다.
그가 남긴 시 가운데 술에 관한 것이 무척 많다. '오늘 아침에 광약을 마셨더니/ 머리가 쟁쟁 울림을 깨달았네/ 아직 단칼에 끊지 못하는 것은/ 쓸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함일세'라는 시가 있다. 제목은 '해장술-쌍운'이며, 이규보가 시에서 말한 '광약'(狂藥)이 바로 해장술이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숱이 줄고, 배가 나오는 자신을 스스로 비웃는 시를 쓰는 '아재'의 면모를 서슴없이 보인다. 반면 '그대 강물 마시는 두더지를 보았는가/ 그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 묻노니 너는 입을 얼마나 갖고 있길래/ 백성의 고개를 탐내서 씹어 먹는가'라는 시로 백성을 수탈하는 탐관오리들을 두더지만도 못한 작자들이라고 비판하는 강직함도 보였다.
이규보는 지금의 인천 계양구와 부평구 일대인 계양도호부 부사로 2년 동안 좌천된 적이 있다. 계양도호부에 처음 온 이규보는 '망망대해의 푸른 물을 돌아보니, 섬 가운데로 들어온 듯하므로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서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보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2년 후 다시 개경으로 올라가게 되자, 절의 누대에서 바라보는 섬의 경치를 즐기며 술을 마시며 놀았나 보다.
이규보는 '저 물은 전날의 물이요 마음도 전날의 마음인데, 전날에 보기 싫던 것을 지금 되레 즐거운 구경거리로 삼으니, 그것은 구구한 벼슬을 얻은 때문일까'라며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같은 바다라도 마음 가짐에 따라 달리 보인다는 것이다.
800년 전 이규보를 이처럼 생생히 복원할 수 있는 까닭은 그가 쓴 시와 산문들을 모은 방대한 기록, 53권짜리 '동국이상국집'이 현존해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선회를 먹었다는 최초의 기록, 엿처럼 달달한 게찜의 맛, 차맷돌에 찻잎을 갈아 우려낸 말차, 고양이·원숭이·앵무새 등 반려동물 문화도 '동국이상국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규보의 글이 없었다면 고려시대를 지금만큼 복원할 수 없었다.
저자인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규보에게서 찾은 고려 사람의 삶과 생각을 89꼭지의 글에 담아내고, 글마다 직접 그린 해학적 삽화를 수록했다. 위트 있는 문체로 이규보의 시대와 현대를 거울에 비추듯 비교한다. 고려시대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동국이상국집》
'고려의 이씨 성을 가진 재상의 문집'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규보의 시문집. 고려시대의 다양한 생활상을 살필 수 있다. 이 책은 고려시대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판본이다.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