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망가졌는데 특별법은 무산 위기… 끝까지 싸울 것"
수원·화성서 시작… 활동 영역 넓혀
거절 구실만 찾는 정치권에 쓴소리
보증보험 의무화·先구제 後회수 요구
"사람 더 죽게 놔둘 수 없잖아요. 끝까지 싸울 겁니다."
29일 오전 9시30분 수원시 권선구의 한 카페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이재호(34) 위원장을 만났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 위원장은 오산에 있는 회사에서 밤샘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직후였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지금의 대책위는 지난해 6월 불거진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사건을 계기로 처음 꾸려졌다. 전세사기 피해자 개인이 대책을 마련하고 공론화하는 데 한계를 느낀 이 위원장은 시민단체를 통해 수원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피해자들과 함께 지난해 10월 수원·화성대책위를 구성했다.
이후 수원과 화성 이외 지역에서도 피해가 속출해 지난해 12월 활동 영역을 경기도로 넓힌 경기대책위를 운영 중이다. 대책위는 각 시군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피해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더불어 전세사기 피해자의 상황을 공론화 하고,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등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 당사자이기도 한 이 위원장은 평범한 일상을 꿈꿔왔다. 그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함께 집에 들어갔고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며 "하지만 우리가 전세사기 피해자라는 것을 인지한 후부터는 기자회견, 언론 인터뷰 같이 '특별한 일상'으로 채워졌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해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세계약을 맺었고 그 이전에 근저당 등을 꼼꼼하게 알아본 임차인들이 많다"며 "여러 정황을 볼 때 우리가 신뢰했던 공인중개사와 은행에게 속았다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지난 28일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에 대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특별법 개정이 또 한번 무산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이에 이 위원장은 "첫 전세사기 피해자가 나오고 특별법이 논의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피해자들 인생이 망가졌는데 정치권은 특별법 개정안을 반대하고 거절할 구실만 찾는다"며 "개인 간 사적 거래라고 지원을 안 하겠다는데 오히려 코인 투자하다가 실패한 사람은 지원하면서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 안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전세사기 발생 시 집주인 채권을 임차인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 개선과 전세계약 시 보증보험 의무화, '선구제 후회수' 등의 방안을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저도 자책하지만, 피해자들이 너무 자책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구제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힘줘 말했다.
/한규준기자 kkyu@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