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과 공감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28일 화려한 개막… 전국 16개 시·도 예선 통과한 공연 경연
삶의 의미·인간성 탐구·환경 문제·시대적 아픔 다룬 작품들
인천 극단 태풍 '귀가'·경기 극단 유혹 '959-7번지' 무대 눈길


2024061701000152600015582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착한 사람은 어렵게 살고, 악한 사람이 부자로 사는 세상은 또 어떤가'.

문학작품이 그렇듯이 연극 또한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한다. 부조리한 세상을 질타하고, 비극적 결말로 눈물을 끌어내기도 한다.

오는 28일 화려하게 막을 올리는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에선 전국 16개 시·도 예선을 통과한 작품들이 '대한민국 최고' 타이틀을 놓고 치열한 경연을 펼칠 예정이다. 검증된 극단의 검증된 작품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껴보면 어떨까.

경기도와 용인시, (사)한국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이번 연극제는 7월23일까지 용인아트홀과 용인시문예회관 처인홀, 용인문화예술원 마루홀, 용인시평생학습관 큰어울마당, 옛 용인종합운동장 등에서 진행된다.

이번 연극제에 공연될 작품 중엔 삶의 의미를 추구하거나 인간성 탐구를 시도하는 것도 있고, 환경 문제나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의 아픔을 그린 것도 있다. 한국 문학의 특징인 시대적 아픔을 다룬 작품들도 여럿 나왔다.

각각의 작품들은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고, 어떻게 공감을 끌어낼 것인지, 또 총상금 1억3천300만원은 어느 극단에 돌아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연극제 무대에 오르는 주요 작품들에 대해 살펴본다.

대한민국연극제
지난 3월2일 용인포은아트홀에서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명예대회장으로 위촉된 국민배우 이순재씨(왼쪽)와 이상일 용인시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3.2 /용인시 제공

■ 삶의 의미 묻는 작품들

극단 태풍(인천)의 '귀가'나 극단 백운무대(전남)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 등은 삶의 의미를 새겨보게 한다.

김문광 작가의 '귀가'(연출·강미혜)에서 아내와 한바탕 다투고 집을 뛰쳐나온 남자는 하룻밤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다가 수상한 노인을 만나 모든 걸 빼앗긴다. 이승의 원망과 미련을 떨쳐버린 남자는 그제야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순수한 영혼만 남은 남자, 관객들 마음의 미련과 원망까지 떨쳐낼 수 있을까.

김정숙 작가의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연출·박광재)은 한 동네에서 40년 넘게 세탁소를 운영하며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남자를 다룬다. 그런데 어느 날 모 집안의 사람들이 세탁소를 습격해 어머니 유품을 내놓으라고 한다. 세탁소는 아수라장이 됐는데…돈과 욕망으로 구성된 행복 방정식의 해답은.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성을 탐구하는 작품들도 다수 나왔다.

극단 도모(강원)는 인연과 윤회를 다룬 김민정 작가의 '인과 연'(연출·황운기)을 올린다. 어느 날 꿈에서 깬 공주는 다리를 감고 있는 뱀을 보고 깜짝 놀란다. 왕은 칼로 뱀을 떼어내려 하지만 뱀은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며 공주를 휘감아 궁궐 담을 넘어간다. 뱀은 공주에게 무엇이며 공주는 왜 뱀을 떨치지 못할까.

인간성을 탐구하려고 연극을 소재로 택한 연극도 있다. 극단 청양(충남)은 연극이 사라진 2055년 세상을 다룬 김용광 작가의 '비밀의 문을 열다'(연출·이성구)를 올린다. 해외에 입양됐다가 친부를 찾으러 온 남자는 친부가 연극배우였다는 단서 하나로 극장을 찾아가나 폐허에서 만난 이로부터 친부 이야기를 듣고 함께 연극을 만들기로 한다. 코로나19로 삶의 무대를 잃었던 연극인들 이야기 느낌이다.

극단 유혹(경기)이 무대에 올릴 김정숙 작가의 '959-7번지'(연출·김민혜)는 칠순을 앞둔 어느 할머니의 집 주소이다. 작고한 남편과 각고 끝에 마련한 집에서 할머니는 다섯 자식을 키워냈다. 자식들이 칠순 잔치를 해준다는 얘기에 할머니는 기쁘게 가족사진을 찍었는데 자식들 표정은 그렇질 않다. 잔칫날 환하게 차려입고 자식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와 가족의 상반된 모습은 어떤 느낌을 줄지 궁금하다.

환경을 다룬 작품도 나왔다. 극단 벅수골(경남)의 '하얀파도'(주유정 작, 연출·장창석)는 오염으로 인해 조업이 금지된 마을을 무대로 한다. 어업활동을 할 수 없어 재활용 가능 해양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잇는 마을 사람들은 쓰레기를 건져내다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가 점점 늘어나 당황한다. 해양오염의 실태를 고발하면서 희망을 찾으려는 시도인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에서 전쟁의 아픔을 고발하는 작품들도 나왔다. 공연창작소 공간(서울)의 '소년간첩'(각색·연출 ·박경식)은 아버지와 함께 살다가 전쟁 중에 간첩이 되어버린 가련한 소년의 삶을 그렸다. 소년은 우연히 가게 된 게임장에서 은화를 가득 가지고 다니는 키다리를 만났고, 그는 적군에게 정보가 담긴 신문을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며 소년에게 제안한다. 인간과 세상을 허망하게 파멸시키는 전쟁의 아픔을 돌아보게 한다.

대한민국연극제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 /용인시 제공

■ 시대적 아픔 담은 작품들

시대적 아픔을 담은 한국적 작품도 다수 나왔다.

극단 푸른가시(울산)의 '96m'(작·연출·전우수)는 100m를 넘지 않는 것을 상징한다. 넘고 싶어도 멈춰야만 하는…. 울산의 한 야산에 '96m'라는 정상 표지판이 세워졌다고 한다. 6·25 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작품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엄청난 과오를 범한 한 사내와 아버지의 과거를 일기장에서 확인하고 함께 아파하는 딸을 그리고 있다.

극단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부산)은 이보람 작가의 '두 번째 시간'(연출·주혜자)을 올리는데, 의문사 사건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37년 전 실족사로 처리된 남편의 묘를 이장하려던 부인은 유골에 난 구멍을 보고 재조사를 요청한다. 그런데 얼마 뒤 아들마저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어두운 시절을 넘긴 사람들이 평범한 삶조차 쉽지 않음을 강조하는 듯하다.

예술공간 오이(제주)의 '프로젝트 이어도-두 개의 섬'(작·연출·전혁준)은 제주 4·3의 비극을 다룬다. 하나의 섬은 제주의 과거. 독립군 출신 도하와 미래를 보는 어도가 제주 4·3의 비극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 하나의 섬은 미래. 독재자가 섬 전체를 감옥으로 만들어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을 모아 가둔다.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존엄을 지키라고 한다.

극단 청사(충북)는 강병헌 작가의 '그때, 그들, 그 집'(연출·송갑석, 각색·위기훈)으로 6·25전쟁을 전후해 조상의 업보를 짊어지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후손들의 갈등을 그렸다. 6·25전쟁 이후 몰락한 지주 가문의 아들을 남편으로 맞은 숙희는 월북 집안 출신으로 시달리고, 경계인인 그는 무당이 되고, 극렬한 신경증을 겪는 남편으로부터 딸을 구하려고 남편을 살해한다.

용인/조영상기자 donald@kyeongin.com

20240617010001526000155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