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 생활정치 활성화 위한 '지구당의 부활'


2002년 한나라당 불법정치자금 사건에 폐지
선관위, 정개특위에 구·시·군당 설치안 요구

중앙당만 비대… 지방의회·지역정치 부실로
신인 등용 차단, 결과적 정치개혁 마저 막혀

민주, 당내 정책위 논의… 행안위 당론 방침
국힘, 한동훈 당대표 후보 적극… 전대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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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시·도당만으로는 정당정치 활성화에 한계가 있어 지구당을 살리고자 한다."

2022년 9월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회의록에는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인 박찬진의 이같은 의견이 여러차례 밝혀져 있다.

선관위는 그보다 1년여 앞선 2021년 5월, 정개특위에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을 개정, "생활정치 활성화를 위해 구·시·군당 설치를 허용하고, 구·시·군당의 사무실을 허용"하는 안을 냈다. 구·시·군 당, 넓게 말해 '돈 먹는 하마' 오명을 쓰고 2004년 폐지됐던 '지구당의 부활'을 선관위가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구당은 2002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대기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으로 폐지됐다. 과거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의 공식 지역 하부 조직을 일컫고, 지구당 위원장은 지역 사무실을 내고, 상시 정치 후원금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해 과거 지구당은 지역 기업과 유력 인사들로부터 돈을 모금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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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의장이 한나라당 대선불법자금 모금을 풍자한 '차떼기'당비 납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구당 폐지=정당정치 후퇴'

= 선관위의 고민을 21대 의원 다수도 공감했다. 금권정치를 예방하고, 지구당 위원장의 사당화를 막으면서 지구당을 부활시킬 나름의 방안이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담겨 발의됐다.

이원욱·우원식·김영배·박재호·이은주·김민철·김승남 등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정개특위에 상정돼 소위에서도 심도깊게 논의됐다.

당시 조해진 의원은 "지구당이 폐지되면서 정당활동이 전국적 단위에서 굉장히 위축됐다. 정당활동 부실화는 정치 부실로 이어졌고, 국가 최고 의사결정의 부실화로 연결됐다. 이런 측면에서 지구당폐지의 결정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정개특위 정치관계법심사소위 2022년4월22일 회의록)

특히 조 전 의원은 '지방의회 부실'도 지구당 폐지와 연관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앙당만 비대해지고 풀뿌리 정당활동이 안되니, 지자체 행정이 지역 정치를 압도하는 상황이 됐다. 지역 정당부실로 지방의회도 들러리만 서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권의 지역정치인인 노충호 한전산업개발 에너지사업본부 본부장은 '정치신인 등용' 차원에서 "2004년 당시 오세훈 의원의 법안으로 지구당이 폐지됐는데, 우리나라 정당발전은 오세훈이 망쳤다"고 단언했다.

현행 법 체계에서 '총선 승자'인 국회의원은 지역구사무실도 운영하고 후원금도 모을 수 있지만, '총선패자'는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사무실도 마련할 수 없고, 후원금도 모을 수 없다.

'승자가 다 갖는(Winner takes it all)' 체제에서 4년뒤 승패는 지역을 얼마나 갈고 닦았느냐로 결판나는 것이 아니라 승자였던 현직 국회의원의 '헛발질'로 갈리게 되는 것이다. 이 체제는 신인 등용을 어렵게 만들어 정치를 '고인물'로 나쁘게 만든다는 것이 노 본부장의 지적이다.

총선 승자만 가진 '정치사무실 주소'는 풀뿌리 정치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주소 없는 정치'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22대 총선 패자인 최재관 더불어민주당 여주양평지역위원장은 전화번호와 이메일만 적힌 자신의 명함을 보여줬다. 여주양평지역 현안을 챙기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주민들을 만날 사무실이 없어 식당·카페를 전전한다.

때론 '○○○정치연구소' 등의 형태로 개인사무실을 두기도 하지만 '법대로'하면 이 사무실에서 대의원, 계층·직능 대표들과 모여 하는 회의는 '위법행위'가 된다. 게다가 개인사무실 운영 비용이 모두 '사비'를 들여야 하므로 정말 '돈있는 사람만' 정치할 수 있다는 구조다.

선관위도 정개특위 회의에서 이 구조가 '범법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중요한 것은 '여론'


= 그럼에도 지구당 부활 반대 목소리가 여전하다. 국민적 공감대가 있느냐에 대해서도 정치인들은 자신 없어 하는 눈치다.

당시 소위는 ▲지구당 대신 '지역당'으로 명칭 정리 ▲중앙당-시도당-지역당으로 법정체계 결정 ▲지역당(국회의원선거구 기준)으로 사무실 설치 ▲지역당후원회 허용. 1년에 5천만원 한도 ▲유급사무원 1명 이내로 고용 ▲지역당위원장 민주적 선출 문구 포함 등의 얼개를 도출한 바 있다.

특히 후원회 허용을 결정한 배경에 정부가 중앙당에 보내는 경상보조금을 253(21대 당시) 지구당이 나눠써도 1년에 2천만원이 채 안된다는 계산이 나오면서 후원회 허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렇듯 상당한 공감대가 있었음에도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국민의힘 이양수(강원 속초·인제·고성·양양) 의원은 2022년 9월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항상 전제가 부작용을 제외한 뒤 해야한다는 것이 따라 붙는데, 부작용 제거가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 김영배(서울 성북갑) 의원은 그해 4월22일 정개특위 소위에서 "지구당 폐지는 고비용 구조 해소라는 어젠다가 있었다. 고비용은, 사실 사무실 운영비나 인건비가 아니라 후원금으로 사업비를 많이 쓴다든지 다른 정치자금으로 쓴다는 문제였다"면서 "지구당을 부활하면 대대적인 비판이 있을 것 같은데 선관위는 대안이 있나"라며 여론을 의식했다.

결국 정개특위 의원들은 각 당 의원총회에서 의견수렴을 하기로 하고 논의를 중단했다.

이를 원외에서 지켜본 한 인사는 "지난 2월 여야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 지방의회 의원도 후원금 모금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오직 원외위원장, 즉 국회의원 후보들만 안된다. 경쟁자 견제하는 것 아닌가"라고 의구심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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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가 4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7.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22대 국회에서 어떻게 논의될까


= 4일 경인일보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민주당은 정책위원회에서 지구당을 논의했고, 이를 당론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배 의원은 "당내 정책위원회에서 논의가 됐다. 정개특위를 이번에는 개헌특위로 꾸릴 것으로 보여, 지구당 문제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조만간 회의에 부쳐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 그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당론으로 논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구당 부활에 가장 적극적인 한동훈 당 대표 후보는 출마선언에서 "(정치신인을 키울) 방법의 하나로 원외 정치인들의 현장사무실 개설 허용을 제안한다"면서 "다행히 선관위와 민주당은 이미 찬성하고 있으니, 우리가 결심하면 된다"고 촉구했다.

입법안은 이미 제출돼 있다. 22대 개원 한달 사이 국민의힘 윤상현(인천 동·미추홀을)·민주당 김영배·남인순·장경태 의원이 정당법·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 지구당 부활을 요구하는 법안이다.

여야가 20년 전의 상황을 뒤집고 지구당에 적극적인 데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워낙 요구도 높지만 원내에서 보더라도 국민의힘은 수도권 원외지역 인사들의 활동 보장, 민주당은 당원민주주의 추구라는 데서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개정이 필요하다.

다만 워낙 여야 대립이 심한 정치상황, 채상병특검·김건희여사특검·검사탄핵 등 현안들이 산적하고, 곧 전당대회, 정기국회, 예산안 정국으로 이어지면 '장기적 숙제'로 밀려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권순정·오수진기자 s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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