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기 입주작가 신재은 '가이아'시리즈


돼지 사체가 깔린 '침묵의 탑' 주목
인천 매립지서 보인 위선적 행위 시각화
스티로폼·밀웜·닭 이용 먹이사슬 선보여
"변형된 유기물·자연과의 관계성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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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은作 '침묵의 탑 Pink(2018년)'. /신재은 작가 제공

흙, 시멘트, 아스팔트 등을 약 3.2m 높이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지층.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돼지의 사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 강렬한 이미지의 설치 작품은 2018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 9기 입주작가 신재은의 것이다. 그해 6월16일부터 7월20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스페이스 3(옛 윈도우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가이아(GAIA) - 프롤로그'에서 선보인 '침묵의 탑 Pink'다.

당시 관람객들은 지층에 깔린 돼지에 파리가 꼬이는 것을 보고 진짜 사체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침묵하는 탑은 땅 위로 솟구친 불편한 진실이기도 했다. 신재은 작가가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문 해는 경기도 김포 등지의 돼지 농가들에서 구제역이 발병해 어마어마한 규모의 돼지 살처분과 사체 매립이 행해지던 시기였다. 이 침묵의 탑을 지표면 아래로 눌러 넣으면 나타났을 바로 그 광경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레지던시 입주 당시 인천에 매립지가 많다는 사실, 그리고 인천아트플랫폼도 갯벌을 매립한 공간이라는 것을 새로 알고 신선하게 받아들이던 참에 한창 뉴스에서 나오던 살처분 광경이 겹쳐 생각이 났어요. '가이아' 시리즈의 시작점이 그 매립지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는 '가이아' 시리즈는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주창한 '가이아 이론', 즉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이자 스스로 조절되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개념에서 착안했다. 인간이 스스로를 존엄한 존재로 격상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적이고 위선적 모습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돼지는 인간과 유전체가 매우 비슷하다. 지능도 높고, 피부의 질감은 물론이거니와 "외형적으로도 인간을 돼지에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작가는 생각했다. 돼지와 인간의 위상이 천지 차이인 이유는 누구에 의한 것이며 무엇 때문인지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가이아' 시리즈는 이듬해인 2019년 8월 인천아트플랫폼 '다시 만나고 싶은 (입주) 작가'로 선정돼 다시 아트플랫폼에서 개최한 전시 '가이아 - 파트 1: Inflammation(염증)'에서 본격화했다. 작가는 복층 구조 전시장에서 '침묵의 탑 Pink'를 미니어처로 다시 세우고, 매립된 돼지가 묻힌 지하 세계에서 석유화된 검은 진액(염증)을 분수처럼 뽑아냈다.

2020년 개인전 '가이아 - 파트 2: White'(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1년 개인전 '가이아 - 파트 3: Twins'(차 스튜디오)에서도 돼지가 '피와 살'로 각각 등장한다. '가이아' 시리즈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로 더욱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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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은作 '이것은 나의 몸(2023년)'. /신재은 작가 제공

작가가 지난해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과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에서 개최한 개인전 '가이아 - 소화계'는 먹을 수 없는 것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창조한 '먹이사슬'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인간은 먹을 수 없으며 소화하지 못하는 스티로폼을 먹이 삼아 밀웜을 길렀다. 논문 등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밀웜이 고분자 화합물인 스티로폼을 먹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작가는 양계장에서 입양한 도계 직전의 종계에게 안락사시킨 밀웜을 먹여 3개월을 더 길렀다. 안락사시킨 종계는 식용 닭고기와 섞어 소시지로 만들었고, 그 소시지를 전시하고 관람객과 함께 먹었다. 그렇게 인간의 소화계로 소화할 수 없는 스티로폼을 소화했다.

작가는 현재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금천예술공장에 입주해 식용으로 흔히 양식되는 흰다리새우를 직접 기르고 있다. '가이아' 시리즈는 이렇게 계속된다.

신재은 작가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싶다"며 "인천에서 돼지로 시작했으나 앞으로 생명체와 유기물 또는 그 변형된 상태에 대해서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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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재단 로고